벌써 수박이 보이길래 『아직 딸기철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어느 새 수박이 나오더라』고 했더니 집사람의 말이 딸기철은 이미 지난지 오래라는 것이다. 그럴리가 있나 하면서 생각해 보니 사실 딸기가 돌아다닌지 꽤 되는 것 같기도 했다. 하기야 웬만한 작물을 거의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데 철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문제였다.내가 「아직 딸기철이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데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우리가 스물 안팎이었던 때에는 6월초가 딸기의 제철이어서 그 어간의 주말, 현충일, 부처님 오신 날등의 휴일에는 떼를 지어 수원등지의 딸기 밭에 놀러가는 것이 일이었다. 이 때는 한꺼번에 딸기가 쏟아져 나오는 시기여서 열흘 전만 하더라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비쌌던 것이 아무리 먹어도 돈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싸지곤 했다. 이 기억이 아직도 나에게는 선명해서 현충일이 지나기까지는 딸기가 있으려니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딸기뿐만 아니다. 수박, 참외등의 과일도 제철이 오기 훨씬 전에 나왔다가 「이제 좀 싸졌으려나」하고 찾으면 벌써 끝물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한 겨울에 딸기와 참외가 보이기도 한다. 요컨대 비닐하우스의 재배가 정착된 이래 과일들은 제철이 따로 없이 일년 열두달 만날 수 있거나 훨씬 일찍 맛볼 수 있게 되었다. 대신 햇볕을 쬐며 자란 과일의 진한 맛은 볼 수 없게 되었고 과일이 흔천한 시기도 없어져 버렸다.
농민들이 안정되게 영농을 할 수 있고 우리가 일년 열두달 온갖 채소와 과일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좋지만 제철 과일과 채소를 먹지 못하고 늘 심심한 맛의 비닐하우스 작물만 먹다가 우리 민족이 가진 작은 고추의 매운 맛을 잃을까 걱정이다. 추위와 더위, 비와 햇볕이 분명하게 나뉘어지는 사계절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동식물을 섭취하다 보니 우리 민족도 치열하게 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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