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이념 벗고 “새로운 혁명” 기치/본사 전·현 특파원 릴레이 리포트세계는 다시 한번 변화의 물결을 맞고 있다. 동서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사라진 공백에는 국가와 지역간의 새로운 전쟁이 여러가지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는 크게는 대륙간 무역전쟁이나 민족주의, 종교분쟁의 형태로부터 작게는 개별국가들의 정치·경제·사회적 변혁과 혼란, 개인 가치관의 변화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각 국가들은 새로운 국제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개혁과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며 생생한 변화의 모습을 취재해 보도한 한기봉 전파리, 유동희 전베이징(북경), 이창민 전도쿄(동경)특파원의 귀국리포트와 세계 각국에 상주하고 있는 특파원들의 현장보도를 통해 지구촌 「변화의 현장」을 진단한다.【편집자주】
지난 17일 파리를 떠났다. 미테랑 전대통령이 엘리제궁을 떠나고 시라크 새대통령이 취임하던 날이었다. 14년만에 엘리제를 떠나는 미테랑의 소회가 3년간의 특파원 근무를 마치고 밤비행기 편에 귀국하는 기자의 다소 감상적인 기분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마감과 새로운 출발이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떠나는 미테랑은 국민들의 행복을 빌고 그의 후임자에게 정의와 평화로 프랑스를 통치해줄 것을 당부했다. 정치가이자 사상가이며 문필가인 그의 간결한 퇴임의 변은 마지막까지 사회주의적이었다.
시라크는 이날 파리시청에서 엘리제궁으로 그의 25년된 낡은 승용차를 타고 갔다. 그는 전임자와는 다른 대중적 이미지를 보이기 위해 수행차량 한대만을 대동하고 교통신호를 꼬박 지켰다. 그 거리는 불과 수에 불과했지만 그가 평생 꿈꾸었던 목적지에 다다르기까지는 14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린 것이다. 시라크는 취임사에서 자신을 국민들의 「희망의 수탁자」라고 말하고 새롭고 강력한 프랑스 건설을 다짐했다. 신드골리즘의 출발을 알리는 취임사이다.
프랑스는 한시대의 퇴장과 개막의 교차선상에 서 있다. 어느 쪽에 더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해야할 지는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14년 프랑스 사회당통치의 종식은 이념적으로는 유럽사회주의의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는 것이며 정치적으로는 미테랑과 콜 독일총리가 기관대를 잡아온 유럽통합열차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시라크의 등장은 강력한 프랑스, 독립적인 프랑스를 외치는 드골리즘의 부활이자 유럽에 보수우파적 가치관이 확산되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7일 결선투표가 끝난 날 밤늦게 샹젤리제거리에 나가 보았다. 프랑스인들은 원래 먹고 마시고 떠드는 것을 좋아하지만 아무나 붙잡고 「빅톼르」(승리)를 환호하는 시민들, 마구 경적을 울려대는 차량들로 도시는 동이 틀 때까지 무척 소란했다. 「페트」(축제)였다. 축제는 반드시 미테랑의 퇴장을 환영하는 우파유권자만의 몫은 아니었다. 조스팽을 지지했던 좌파유권자들도 축제의 주역이었다. 한시민에게 누구를 찍었느냐고 물어 보았다.<한기봉 기자> <2면에 계속> 한기봉>
◎시민들 “강력한 국가”갈구의 외침”
즉시 돌아온 대답은 「사 메 테갈」(누구라도 상관없다)이었다.
왜 상관이 없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프랑스 대선을 취재하면서 이번 선거는 인물과 좌우의 이념에 대한 투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변화에 대한 욕구의 분출 그 자체로서 더 큰 의미가 있는 거대한 한풀이굿과 같은 행사로 보였다. 시라크나 조스팽이나 발라뒤르총리나 모든 후보들은 한결같이 변화와 개혁을 제일성으로 내세웠다.
미테랑의 14년은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지만 대체로 부정적이다. 국민복지의 향상과 자유의 신장, 문화적 자긍심의 고양, 인권존중등은 긍정적 덕목이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는 검찰에 소환된 적이 없는 고위정치인을 찾기가 어려울 만큼 만연된 정경유착형 부정부패와 선진서방에서 가장 높은 12%의 고실업률, 북아프리카 이민의 증가, 군주적이고 권위적인 통치스타일 등 부정적 유산에 가려졌다.
시라크는 민심을 잘 읽었다. 그는 프랑스의 문제를 고전적 이념의 대립보다는 엘리트출신의 그랑부르주아(부유층)와 전후 최악의 경제난의 희생자인 프티부르주아(소시민)간의 사회적 갈등으로 간파했다. 이에 기초한 선거공약과 대중적 이미지로 변신한 선거운동은 대권3수생 시라크의 가장 큰 승리요인이 됐다. 대선기간에 부각된 프랑스의 사회분위기는 좌절과 비관이었다. 끊임없던 시위와 파업의 인질은 바로 후보들이었고 이제는 그것이 당선자에게 돌아갔다.
샹젤리제의 축제분위기는 새대통령에 대한 축하의 예포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변화와 개혁을 갈구하는 절실한 외침으로 들렸다. 2백5년전 혁명의 열기가 타올랐던 콩코르드 광장에 흩뿌려진 삼색기와 샴페인은 프랑스의 새로운 혁명을 잉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 선거의 진정한 승자는 시라크가 아닌 프랑스라고 생각하며 파리를 떠났다.<한기봉 기자>한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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