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희성인데다 조부께서 지어주신 이름 끝자 관이 권자로 불리는 경우가 많고, 수인사후 성명을 바로 기억하는 이가 드물어 아예 명함에 한글병기를 한지 오래됐다. 그래서 부드러운 한글이름이나 왕년의 레슬러 김일씨 같이 부르기 쉽고 간결한 이름을 부러워한 적도 있다.94년말 대법원이 국교생에 한해 95년 1년동안 개명을 허용하자 현상범, 송충희, 김치국, 조지나 등 발음과 어감이 이상하거나 일본냄새가 나는 이름을 다른 것으로 바꾸겠다는 개명대열이 줄을 잇고 있다. 사람이름뿐 아니다.
광복50주년을 맞아 일제잔재청산차원에서 「국민학교」란 명칭을 국민적 공감대를 갖는 새 이름으로 바꾸자는 명칭개정운동도 민간차원에서 본격화하고 있다. 황국신민의 국자와 민자에서 비롯된 국민학교란 명칭대신 새싹학교 보통학교 초등학교 기초학교 어린이학교 소학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아들 딸을 낳으면 작명소를 찾아 가거나 국어사전과 옥편이라도 뒤져 의미있고 부르기 좋은 이름을 짓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나 시교육청은 신설되는 초중고교의 교명을 아무렇게나 짓는 경우가 많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는 방학중이 있다. 전화라도 걸면 항상 『방학중』이다. 강서구 화곡동 우장산기슭의 우장국교는 쾌청한 날에도 비옷을 연상케 한다. 남대문 근처에 있던 남대문중학교는 엉뚱하게 성북구 장위동에 소재하고 있다. 도심을 벗어나 이사를 간 것이다. 이같은 무신경한 이름짓기는 사립보다 공립이 심한 편이다. 중랑구 면목동에는 면자 돌림학교가 유난히 많다. 면목, 면중국교를 중심으로 동쪽에는 면동, 남쪽에는 면남국교가 있다. 인접한 망우동에도 면목동을 의식한듯 면북, 면일국교등이 면면을 보이고 있다. 일부사립학교와 장애아들을 가르치는 특수학교는 그래도 학교이름에 소중한 뜻을 담아 짓는다. 85년 강동구 상일동에 문을 연 주몽학교는 정신지체및 지체부자유아동들을 위한 특수학교이다.
이 학교의 설립자는 88년 작고한 예비역대령 김기인씨로 그는 한국전쟁때 중상을 입어 휠체어인생이 됐다.
김씨는 소설과 영화로 수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던 한운사씨 원작의 순애보 「이생명 다하도록」의 주인공이다. 『꿈속에서라도 달려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김씨는 장애아를 위한 특수학교를 세우면서 교명을 주몽이라 하여 장애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려 한 것이다.<여론독자부장>여론독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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