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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당 시조와 민족정신/대한적십자사 총재 강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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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당 시조와 민족정신/대한적십자사 총재 강영훈

입력
1995.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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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때 은사로 자주방문… 암울한시절 “희망과 위안”생래 시정이 미약한 필자가 92년에 시조생활사로부터 부탁을 받고 평생 처음 지은 시조가 고향이라는 제목의 졸작이었다. 문학부문에 소질이 없는 내가 처음 시조 몇 수에 접하게 된 것은 평북 영변에 있는 농업학교 3학년때였다. 조선어독본을 가르치던 박병희선생께서 교실에 들어오시자마자 침통한 표정으로 조선총독부 지시로 이것이 조선어독본 마지막 시간이 됐다고 하시며 강의는 그만두고 시조 여러 수를 흑판에 쓰셨던 것이다.

그 중 두 수는 한평생 살아오는 동안 생활지침이 되었다. 즉 포은 정몽주(포은 정몽주)의 「이 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와 봉래 양사언(봉래 양사언)의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였다. 이 두 시조를 마음껏 외칠 때는 일제가 아무리 우리 민족을 말살하려 해도 나의 애족정신에는 변함이 없다는 맹서를 되풀이했고 아무리 힘들더라도 끝까지 노력하면 안될 일이 없다는 다짐을 했다. 선생께서 이 두수를 쓰신 것은 자세한 말씀은 안하셨지만 그런 정신을 견지하라는 교훈이었다고 생각된다.

민족에 대한 소박한 감정은 대학에 진학하면서 발전돼 갔다.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못쓰게 되고 민족역사는 왜곡 기술되고 창씨개명까지 강요당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침통하고 울적할 때 내가 다니던 만주건국대 학생들은 은사 륙당 최남선(육당 최남선)선생을 찾아가 말씀을 들으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오족협화(조선족과 일본 중국 몽골 백계로서아) 왕도락토를 만주에 건설한다는 일제의 대륙침략정책 하에 일인을 주축으로 한 대학당국에 의해 륙당은 조선족 대표교수로 초빙되었다. 륙당은 첫 학기 동방문화론이라는 제목으로 백두산중심 조선민족문화가 동아시아 문화중심이라는 강의를 한 후 교육지침에 맞지 않는다 하여 다시 강의를 하지 못하고 계셨다. 륙당 자신이 울적한 심정으로 지낼 때였으므로 선생의 말씀은 자연히 한민족역사와 민족장래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되었다.

그런 심정은 「봄길」이라는 시조에서도 헤아릴 수 있다. 이 시조는 아무리 찬 비가 뼈에 스며들어 견디기 어렵다 해도 참고 이겨나가면 봄은 온다는 민족장래에 대한 희망을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되었다. 륙당은 언제나 매사에 시간이라는 요소가 중요하다고 역설하셨다. 륙당의 민족장래에 대한 기대와 신념은 제2연에서 다시 강조된 것을 볼 수 있다. 비에 젖은 개구리가 그 무엇에 쫓기어 헐떡이고 있지만 아름답고 따뜻한 봄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는 시정 속에 변함없는 애국애족의 일편단심을 엿볼 수 있다. 일제하에서 의기소진하여 가는 겨레를 고무·격려하려는 것으로 생각되는 륙당의 시조중 「봄길」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아는 륙당의 본심이 잘 표현돼 있기 때문이다.

고시조든 신시조든 시조는 간단한 형식속에 겨레와 각 시대의 생활감정, 인생철학을 솔직하게 표현해 민족생명의 발랄한 약동을 담고 있다. 시조는 온 겨레가 즐길 수 있으며 우리를 반성하게 하고 고무해주는 문화재산이다. 근래 우리 사회 일각에서 시조생활문화운동이 조용히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기쁨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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