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차명·시간조작·증거인멸 등/금융직원 개입땐 변칙처리 가능/비밀보호 강화돼 꼬리잡기 더어려워이형구 전노동부장관의 돈세탁 수법이 탁월해 검찰이 대출비리 혐의를 확인하는데 애를 먹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검찰이 밝힌 이장관의 뇌물수수와 돈세탁은 지난 93년8월 금융실명제가 실시되기 전에 이뤄진 것들이어서 단지 「과거의 일」로 여겨질 수 있다. 금융실명제 아래에서 이같은 돈세탁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감독당국이나 금융계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과거보다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거와 같이 여러개의 가명계좌를 이용한 돈세탁은 불가능해졌지만, 지금도 금융기관직원이 개입해 업무를 변칙적으로 처리할 경우 자금추적을 쉽게 따돌릴 수 있다고 이들은 말한다. 특히 실명제이후 예금자 비밀보호가 강화돼 검은 돈의 꼬리를 잡기가 더 어려워졌다는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이장관의 뇌물수수가 실명제이전에만 있었다는데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대출커미션이 실명제이후 다소 감소했을지는 몰라도 갑작스럽게 사라졌을리는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장관이 실명제실시이후에도 새로운 돈세탁수법을 이용해 검찰의 자금추적을 교묘히 따돌린 것이 아니겠느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금융계관계자들은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에도 돈세탁 수법이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은행감독원은 실명제 이후에도 ▲수표로 입금 또는 출금한 것을 현금으로 입·출금한 것처럼 꾸미거나 ▲수표를 받은뒤 전표에 현금을 받은 것처럼 표시하고 이 수표는 다른 정상적인 계좌에 입금시켜 수표추적을 막는등의 돈세탁 수법이 여전히 이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수표발행 시각이나 입금시각을 조작해 수표추적을 피하는 「시간차 수법」 ▲전표나 마이크로필름을 폐기처분해 증거를 아예 없애버리는 행위등 불법·변칙적인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과거와 다른 점은 수표액면가 쪼개기나 가명계좌 이용과 같은 간단한 수법들이 사라진 대신 창구직원의 협조하에 이뤄지는 다소 위험하고 복잡한 수법들이 많이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실명제로 인해 가명계좌는 개설할 수 없지만 합의차명은 얼마든지 가능한 점을 이용, 친인척 명의로 돈세탁을 하는 것도 실명제 이후 새로운 양상으로 꼽혔다.
은감원 관계자는 『수십억원의 예금을 해주는 특별고객이 이러한 부탁을 해올 경우 쉽게 뿌리치기가 어렵지 않겠느냐』며 『이러한 일이 없도록 금융기관 자체 통제기능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중은행의 한 지점장은 『실명제이후 과거와 같은 돈세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실명제와 법규 위반사실을 뻔히 알면서 돈세탁에 개입하는 창구직원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김상철 기자>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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