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담담… 보도진질문엔 “묵묵”/검찰 “촬영때 예의를” 이례주문24일 하오 2시 정각 서소문 대검청사에 출두한 이형구 전노동부장관은 담담한 표정이었으나 『혐의사실을 시인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일절 답변하지 않고 조사실로 직행했다.
이전장관은 변호사와 협의해 작성한 「자수서」를 23일밤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검찰 관계자는 『93년 사정수사때 구속된 고위공직자 대부분이 법원에서 자수감경을 인정받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며 『이전장관이 이를 염두에 두고 자수서를 제출한뒤, 자진출두 형식으로 소환에 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전장관은 철야조사에서 『오래된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정도 돈이라면 받은 것도 같다』는등 애매한 답변으로 일관, 수사검사인 김성호 중수2과장과 신경전을 벌였다.
이전장관은 또 『검찰이 수사한 부분을 제시하면 가부를 말해주겠다』며 검찰의 수사방향과 범위를 은근히 떠보는 고도의 전술을 구사하는등 검찰 조사에 대비, 사전에 답변방법등을 꼼꼼히 준비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지금까지 조사결과 기업체에서 산은간부들에게 뇌물을 전달할때 회사대표는 총재, 사장이나 전무급이 부총재, 이사급이 부총재보를 맡는 형태의 개별접촉 방식을 택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이전장관과 홍대식사장소유의 상업·주택은행개설 3개 가명계좌에서 산은시설자금 대출승인시점인 92년 3월 전후 비슷한 규모의 뭉칫돈이 집중적으로 입금된 사실이 확인된 반면 새정부 출범직후인 93년에는 거의 입금되지 않은 점으로 미뤄 92년이 「최고대목」이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검찰은 그러나 이전장관등이 현재 계좌추적중인 상업·주택은행의 3개 계좌외에 가명계좌를 더 갖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이들이 워낙 철저하게 돈세탁을 해 수표추적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전장관이 받은 뇌물의 사용처 수사에 대해 계속 말을 바꾸며 명확한 답변을 회피해 벌써부터 수사축소 의혹이 대두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23일 상오에는 『사용처도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하오에는 『수뢰액이 많지 않은데 사용처까지 밝힐 필요가 있겠느냐. 대부분 개인용도로 쓴 것같다』고 수위를 낮췄다.
이 관계자는 다시 24일 『개인비리 수사에 국한하겠다고 말하면 「축소수사」라고 비난하고, 사용처도 수사하겠다면 「금융계 사정착수」라고 확대보도할 것 아니냐』며 말꼬리를 흐렸다.
○…검찰은 소환에 앞서 이례적으로 기자들에게 사진취재시 「예의」를 지켜줄 것을 특별요청했다.
검찰은 15일 대통령의 사촌처남 손성훈씨 구속당시 사진취재를 불허한데 대한 비난성 기사가 이날 모 일간지에 실린 것을 의식한듯 『사진취재를 허용하는 대신 「포토라인」을 정확히 지켜 불상사가 없도록 해달라』고 각별히 당부했다.
◎검찰 이 전노동 수뢰수사 전망/파장최소화 조기매듭 시도/받은액수만 확인 사법처리 서둘러/사용처·정치권 개입여부엔 소극적
검찰이 24일 이형구전노동부장관을 전격 소환함으로써 이번 사건은 사법처리를 위한 막바지 단계에 들어섰다.
검찰은 25일께 이전장관과 산은 계열사 사장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매듭짓고 사건을 신속히 마무리, 파장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수표추적에는 1주일 이상 걸리지만 내사단계에서 기업체 간부들을 불러 뇌물로 제공한 수표를 확인했고 이미 가명계좌 수사도 끝난 상태여서 영장 청구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의 관심거리는 ▲정확한 수뢰액수 ▲뇌물의 사용처 ▲대출과정의 정치권 개입여부등이다. 검찰은 23일 법원에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이전장관과 산은 계열사 사장들의 가명계좌 3개와 이와 연결된 40여개 계좌의 자금흐름을 추적, 정확한 수뢰액을 밝히는데 주력하고 있다. 금융실명제 실시(93년 8월) 이전 「나오미」「김용학」「김명경」등 명의로 개설된 이 가명계좌를 통해 뇌물거래가 이루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전장관의 수뢰액이 「1억3천여만원 이상」이라고만 밝힐 뿐 조사가 끝날 때까지는 구체적인 액수를 밝힐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전장관의 수뢰액이 이를 훨씬 상회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의 총재재직 4년간 잡음이 많았고, 뇌물제공업체가 10여개로 드러났으며, 시설자금이 워낙 덩치가 커 뭉칫돈이 커미션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근거이다.
뇌물 사용처 수사에 대해 검찰은 소극적인 자세다. 이원성 중수부장은 이날 『뇌물액수가 개별 사안별로는 그다지 크지 않다』며 『사용처 수사여부는 아직 말할 단계가 아니다』고 밝혀 수사를 확대할 의향이 없음을 시사했다.
대출과정의 정치권 개입여부에 대한 수사도 불투명하다. 8조2천억원에 달하는 산업은행의 자금 공급규모로 보아 정치권이 대출과정에 개입할 소지는 있지만 이전장관을 둘러싼 커미션 거래를 완벽하게 파헤치려면 사용처 조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또 소문으로 떠도는 국책은행등 타 금융기관 대출비리 수사에 대해서도 검찰은 『성급한 추측』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한편 이번 사건으로 검찰이 발표한 덕산그룹 수사 결과에 대해서도 의혹이 일고 있다. 덕산그룹 부도사건 수사가 끝난 뒤 검찰은 봉종현 장기신용은행장, 김영삼대통령 사촌처남 손성훈씨등을 차례로 구속하면서 덕산그룹 수사중 혐의가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전장관 뇌물사건도 박성섭 덕산그룹회장의 회사 가지급금 사용처 수사과정에서 튀어나왔다고 검찰은 밝혔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덕산그룹 수사결과 전모는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지 않느냐는 의혹도 이번 기회에 씻어야 할 것이다.<이태희 기자>이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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