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무분별 개발 문화재훼손 재촉”/고속철·경마장건설 보는 학계입장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무분별 개발 문화재훼손 재촉”/고속철·경마장건설 보는 학계입장

입력
1995.05.25 00:00
0 0

◎국보포함 206점 균열등 직간접 피해/규제따른 보상차원 세혜택등 주장도경주는 1920년대의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 발굴을 통해 천년이라는 세월의 두터운 옷을 벗기 시작했다. 일제는 집주인이 안마당을 넓히는 과정에서 금관총이 발굴된 것을 계기로 본격 발굴에 나서 금령총을 발굴했다. 1926년에는 구스타프 스웨덴 황태자가 참여한 가운데 서봉총이 발굴됐다.

이후 고분발굴은 1940년대 경주 전역에 대한 지표조사를 실시한 일본인 오사카 긴타로(대판금태랑) 경주박물관장에 의해 가속됐다. 광개토대왕 제사유물이 출토된 호간총(호우총) 발굴은 우리 손으로 이루어진 최초의 경주발굴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46년 호우총에서 「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간십」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동기를 발굴했다. 5세기 신라와 고구려 교류사를 규명할 수 있는 유일한 유물이었다.

이어 60년대이후 천마총, 황남대총 황룡사터 발굴같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 정부는 본격발굴을 위해 73년 경주고적발굴조사단을 구성, 90년 경주문화재연구소로 확대개편할 때까지 운영했다. 또 관광종합개발계획을 세우고 경주박물관 신축, 불국사(불국사) 개발에 나섰다. 72년엔 건물고도를 사적지 주변 7(한옥 단독주택), 도심·업무·상업용지는 25(8층 높이)로 제한했다. 이런 노력덕분에 경주는 79년 유네스코가 주관한 아시아역사도시 연구사업에 태국 스코타이등 18개 도시와 함께 연구도시로 선정됐다. 문체부는 올해 석굴암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등록신청해 12월 세계유산위원회 정기총회에서 등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학자들은 80년대들어 무차별적 개발로 경주가 훼손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85년에는 경주보문단지에 도투락월드가 개장됐고 용강동 황성동 선도동일대에 15∼20층 고층아파트 5천가구분이 건축되고 있다. 학계는 특히 고속철도 경주통과와 경마장 건설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3월 역사·고고·미술사관련 16개 학회는 공동성명을 발표, 고속철도의 경주통과를 반대하는 공개적 반대운동에 나섰다. 또 26∼27일 한양대에서 열리는 제36회 역사학대회에서 지난 3월 경주시민의 실력저지로 중단된 「경주문화재보존 공개세미나」를 속개하고 「고속철도 경주통과반대 1만인 서명운동」도 전개할 계획이다.

학계는 ▲고도(경주)보존을 위한 특별법 제정 ▲문화재보호법 개정 ▲경부고속철도 대구·부산직행 ▲경주경마장 외곽이전등을 주장하고 있다. 제한과 금지만 규정하고 보상규정이 없는 문화재보호법은 「문화재파괴법」이나 다름없으므로 고쳐야 하며 개발제한에 따른 시민의 불이익을 해소해주는 세제혜택, 각종 보조금지원이 가능하도록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고속철도 경주통과시 문화재가 파괴·훼손되며 경주경마장의 입지도 부적절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영남대박물관이 93년 실시한 「경부고속철도 대구·경북권 문화재 지표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국보 25호 태종무열왕릉비등 문화재 2백6점이 철도건설의 영향을 받는 철로중심 2안에 있다.

이 가운데 신라유적이 몰려 있는 경주시·군 지역에만 절반이 넘는 1백30여점이 분포해 있다. 국보와 천연기념물 모두, 보물 12점 가운데 9점, 사적 20군데중 17군데가 이곳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건설과정의 발파진동 및 소음등으로 균열·도괴등 직접피해가 우려되는 철로중심 5백안에만도 중요문화재 48점이 분포된 것으로 조사됐다.

경주문화재연구소의 지표조사에 의하면 경마장부지(29만여평) 일대인 경주시 손곡동, 경주군물천리 일대에는 5세기말 6세기초 신라가 중앙집권적 고대국가로 발돋움한 지증왕, 법흥왕시기의 문화유적군이 있다.

학계는 이 조사가 육안에 의한 지표조사 결과이므로 이보다 훨씬 많은 문화재가 파괴되거나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진홍섭(진홍섭) 전 문화재위원장은 『경주는 건강했던 옛 모습을 잃고 중환에 시달리고 있다』며 『적절한 처방을 내려 기필코 회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서사봉 기자>

◎경주문화재 보존실태 알아보면/예산·인력부족에 당국 무관심겹쳐 거의 방치/기울어진 첨성대·황복사지등 보수 손도 못대

경주의 문화재는 신음하고 있다. 억불숭유정책의 조선과 민족문화 말살에 혈안이 됐던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왕릉은 도굴되고 사찰이 붕괴된 자리에는 잡초와 이름없는 묘들이 들어섰다. 최근에는 공해로 중병을 앓는 문화재까지 늘고 있으나 보수·보전대책은 극히 일부에 국한되고 있다.

관계당국의 무관심과 무지는 무분별한 개발보다 더 문화재보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경주시와 경주문화재연구소에는 변변한 문화유적 보존실태자료도 없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신라문화연구소가 경주시의 용역의뢰를 받아 10년전에 펴낸 「경주지역 문화유적 보존개발계획」이 유일한 자료나 다름없다. 이 자료가 경주시에도 제대로 보관돼 있지 않은 현실이 경주문화재의 위기를 웅변한다.

국보21호인 석가탑(불국사 3층석탑)은 8세기 중엽에 세워졌으나 복원당시 9세기말에 만들어진 전북 남원의 실상사 3층석탑 꼭대기의 상륜부를 본따 붙여 논란을 빚고 있다. 간결·장중한 기품의 석가탑에 작품양식이 다른 신라말기시대의 화려한 상륜을 얹어 기형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또 경주시 배동에 있는 보물 63호 석불입상에는 산성비에 의한 훼손을 막기 위해 최근 보호각이 설치됐으나 지붕을 유리로 하지 않아 햇빛이 차단됨으로써 불상의 모습이 매우 흉칙해 보인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다리 월정교지(길이 63 폭 9 경간 13)를 복원하던 경주시는 84∼86년 교각석 귀틀석 난간석등 석재 2천8백여개를 쌓아둔채 10년이 다 되도록 방치하고 있다.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해 7월1일부터 주변 차량통행이 전면통제되는 첨성대와 황복사지등 상당수 문화재에 대한 보수가 시급하나 부지하세월이다.

국보 29점등 3백86점의 드러난 문화재와 드러나지 않은 매장 문화재를 보호·관리·발굴하는데 필요한 예산·인력은 말하기도 부끄러울 지경이다. 행정구역이 통합되기전 경주시가 문화재예산 1백41억여원을 중앙에 신청했으나 책정된 액수는 15.6%인 22억원에 불과했다.

문화재 관리공무원은 경주시 17명, 사적지 공원관리원 59명, 경주문화재연구소 10명이 고작이다. 그나마 전문인력은 극소수여서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를 기대하기 어렵다.<경주=전준호 기자>

◎경주과제 이렇게 해결하자/“외곽에 별도 신도시 건설 경부고속철도 지하화로 개발과 보존 동시진행을”

필자는 경주문화유적 조사관계로 70년대부터 경주를 드나들었고 76년부터 90년까지 경주 고적발굴조사단장을 맡아 지하매장 문화유산을 발굴조사하면서 경주시민의 당면과제가 무엇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곤 했다. 그것은 문화유산 보존과 도시개발의 상충에서 오는 문제였다. 그간 수많은 세미나 공청회가 마련되어 토의했으나 무엇 하나 결론에 이른 것 없이 시가지에 고층건물이 세워지는등 너무나 급속히 변하는 모습에 안타까운 심정을 간직해 오고 있었다. 지난 3월18일 경주문화유산 보존에 따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세미나를 한국고고학회등 여러 학회가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가지려다 경주에서 상경한 시민단체와의 충돌로 무산됐다는 기사를 보고 정말 마음아팠다. 그렇다고 마냥 학계와 평행선만 긋고만 있으면 될 일이 아니니 이제 뭔가 근본적인 해결의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먼저 경주는 왜 보존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역사 속에 1천년의 수도로서 이어온 역사도시로는 경주가 유일하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보존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경주는 신라의 수도였으며 고대 동아시아의 문화,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다. 뿐만 아니라 그 역사성으로 인해 단절되고 망각된 고대가 아니라 민족문화의 뿌리로 힘차게 살아 있다. 경주는 역사와 고대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며 인류문명의 증거물로서뿐 아니라 한국민의 문화적·역사적 고향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따라서 순수한 역사도시로서 살아 있어야 하며 개발에 의해 오염된 도시로 변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더 이상의 발전으로 인한 유적파괴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과 경주시가 살아 있기 위해서는 개발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맞서고 유적 자체의 보수·정비라는 미명 아래 새로 단장하는 것도 안된다는 극단적 주장도 있다. 이 모두를 충족시킬 방안은 전혀 없는 것인지, 경주에 손만 대면 학계가 들고 일어나 반대하는 악순환을 막는 방법은 없는지 진정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 볼 문제이다. 역사도시로서의 보존과 근대도시로서의 발전을 충족시킬 수 있는 대안은 과연 없는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새로운 도시의 건설이다. 이것은 서울의 강남개발이나 창원신도시 분당 일산등의 예에서와 같이 도시기능의 이전이 구도시 개발을 억제함으로써 더 이상 문화유산의 파괴를 막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 할 것이다. 이 방법이 정해지면 자연스럽게 지금 첨예하게 맞서 있는 고속철도 노선문제도 새롭게 검토될 것이며 신도시에 공공기관과 나아가 경북도청등을 옮긴다면 빠르게 경주신도시가 형성되고 지역경제도 활성화되어 경주시민들에게 경제혜택이 돌아갈 것이다. 경주시와 경주군이 통합되어 광역화한 현시점에서 고려해 봄직한 방법이다.

두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고속철도를 지하화하는 방안이다. 공사기간과 사업비 증가라는 문제가 있겠으나 고도 환경및 유적의 보존차원에서 차선책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경주중심지 및 시가지를 벗어난 지역에 건설될 역세권을 중심으로 새 도시건설을 병행하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어떤 지역이 신도시 개발지로 선정되더라도 반드시 철저한 발굴조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경주는 역사도시 보존이라는 주된 입장에서 개발이 모색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후손에게 귀중한 문화유산을 온전히 물려주게 될 것이고 자신의 역사를 없애고 개발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제시기인 1921년 금관총 발굴로 출토된 신라금관을 서울로 가져가지 못하게 경주사람들이 성금을 모아 보관시설을 마련, 박물관이 세워지도록 한 긍지를 되새겨 더 이상의 개발로 인한 문화유산의 파괴를 막아야 할 것이다.<조유전 국립민속 박물관장> ◇약력

▲경남 마산출신·53세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동아대대학원 ▲공주 무령왕릉·창원 성산패총 발굴 ▲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경주고적발굴조사단장 ▲문화재연구소 유적조사연구실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