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O·아랍국 반발속 서방국들도 등돌려/내부에도 「뜻밖 복병」… 내각불신임안에 발목이스라엘 정부가 22일 동예루살렘 토지몰수 조치를 사실상 철회함으로써 예루살렘에 일단 평화가 찾아왔다.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동예루살렘내 2곳의 아랍인 소유토지 53㏊를 몰수, 유대인 주택등을 건설키로 한 계획을 승인한 지 22일 만의 재심의 결정이다.
원래 이 토지몰수조치는 이스라엘이 67년 3차 중동전때 요르단으로부터 빼앗은 동예루살렘을 자국영토로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취해진 것이었다. 여기에는 물론 이스라엘 국민들의 인기를 끌어 차기총선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라빈 총리의 정략적인 계산도 숨어있었다.
하지만 동예루살렘을 장차 수도로 삼으려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가만히 있을리 만무했다. PLO는 자치협상 중단을 경고하면서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국가들은 토지몰수 문제를 다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촉구하는 한편 긴급 정상회담을 갖기로 결의했다. 국제적인 여론도 이스라엘측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프랑스등 서방국가들도 유엔 안보리 소집에 찬성하고 나서는등 파문은 확산돼 갔다. 유엔 안보리가 토지몰수 계획취소 요구 결의안 채택을 강행할 정도로 이스라엘은 사면초가였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동예루살렘에 집착하는데는 뿌리깊은 이유가 있다. 이곳이 양측 모두의 정신적 고향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 있어 예루살렘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 유대인의 본거지이자 2천여년간의 유랑생활(디아스포라)동안 귀향을 꿈꾸던 시오니즘의 성지다. 회교도인 팔레스타인인들에게도 이곳은 마호메트가 승천할 때 찍힌 발자국이 남아있다는 「템플 마운트」 사원이 있는 성소이자 전래의 터전이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80년 『예루살렘은 분단될 수 없는 영원한 우리의 수도』라고 선언했고 팔레스타인은 이에맞서 88년 예루살렘을 장래의 수도로 결의했다. 93년 평화협상 당시 이스라엘과 PLO는 96년까지 동예루살렘의 지위에 관한 협상을 마무리짓기로 했지만 이 문제는 마지막까지 협상의 걸림돌이었다.
이스라엘의 급작스런 토지몰수조치 백지화는 대부의 복병때문이었다. 아랍계 의원 5명이 내각불신임 동의안을 제출한 것이었다. 이에 제1야당인 리쿠드당이 동조하고 나서면서 라빈내각은 붕괴위기에 직면했다. 유엔도 두려워하지 않던 이스라엘 정부지만 결국 계획을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의 이번 항복선언이 「트로이의 목마」에 의한 것으로 비유되는 것도 이같은 내부로부터의 공격때문이었다.
하지만 몰수계획 전면취소가 아니라 재심의를 뜻하는 이번 결정으로 복잡미묘하게 얽혀있는 동예루살렘 지위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완전철회까지 이스라엘과 PLO측의 밀고당기는 힘겨루기는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윤순환 기자>윤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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