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매년 태어나는 어린이 4백만명 가운데 1천∼2천명이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보균자로 추산되고 있다. 이 수치는 해마다 7천여명의 에이즈 감염 임산부가 아기를 낳고 있다는 통계에 근거한 것이다. 생후 2개월이 지나야 자체 면역이 생기므로 에이즈에 감염된 신생아의 정확한 숫자는 파악이 힘들다. 다만 모체로부터의 에이즈 전염률이 15∼30%이므로 그 수를 어림잡을 따름이다.천형의 굴레를 쓴 이 어린 목숨들은 대부분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모른 채 임신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다. 이들 어머니들은 자식의 병이 자기에게서 비롯됐다는 죄책감에 2중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고통마저 기꺼이 감수하며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는 산모들도 있다.
동기는 여러가지다. 어떤 이는 단지 「가족의 완결」을 위해서, 어떤 이는 에이즈로 잃어버린 아이를 대신할 또 다른 아이를 갖기 위해서 모험을 감행한다. 또 어떤 부부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자신들보다 더 나은 생을 살아주길 기대하며 핏줄을 남기려 한다.
더디지만 조금씩 진전을 보이고 있는 의학기술도 한 이유가 된다. 특히 모체로부터의 에이즈 전염률을 8% 수준으로 떨어뜨려 주는 것으로 알려진 AZT라는 약은 실제 효능 이상으로 이들에겐 기적의 명약이자 희망의 등불이다.
이기적이고 어리석으며 터무니 없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비판에도 이들은 개의치 않는다. 자식의 생명을 담보로 무책임한 도박을 하고 있다는 비난도 이들의 의지를 꺾지 못한다. 이들은 8%의 감염 가능성보다 92%의 반대편 가능성을 생각하고 꿈꾼다. 자식을 갖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힌 맹목의 모성은 끔찍하고 처절하며 위대하다.<뉴욕=홍희곤 특파원>뉴욕=홍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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