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비극넘어 역사의 외침으로/화려함배제 절제된연출 돋보여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삶에 큰 주름이 질때마다 스러져가는 왕가의 비운이 물씬 묻어난다. 『날 버렸으면서…. 나라가 거기 있는데도 다들 날 잊었으면서…』라는 옹주(윤석화 분)의 절규에 객석도 슬픔에 잠긴다. 우리 근대사의 격동을 상징하는 한 맺힌 삶을 살은 옹주는 볼모로, 정략결혼의 희생자로, 그리고 말을 잃은 조발성치매증 환자로 취급된다.
작가 정복근은 고어와 현대어를 병행시켜 전통과 외세가 공존하던 시대를 표현하고자 했고 연출가 한태숙은 화려함을 배제한 정갈한 조명에 슬라이드등 영상효과를 곁들였다. 격동의 시간을 표현하는 북, 비극적 삶을 애잔한 선율에 담아내는 첼로, 그리고 육성으로 이뤄진 음악과 검은색을 주조로 만든 무대가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옹주가 친구 미치코의 애인 다케시백작과 정략결혼하게 되자 결혼식날 아침 미치코가 자살한다는 멜로적인 요소도 포함돼 있다.
작품의 의도에는 「침묵의 칼날」이라는 표현이 말해주 듯이 옹주의 비극을 개인의 비극에 국한시키지 않고 역사의 한 부분으로 해석하고 수용하려는 노력이 깔려있다. 그리고 그러한 의도는 서사적인 설명으로 형상화한다. 나레이터역할을 겸하고 있는 유모(이주실 분)를 비롯, 극 전체가 옹주의 삶을 사람들에게 차근차근 이야기해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때문에 충신이지만 치밀하지 못한 김황진대감(원근희 분)이나 약삭빠른 친일파 한창수장관(강신일 분), 그리고 옹주를 저버린 다케시백작(한명구 분)은 모두 그리 큰 비중은 아니지만 이 연극의 극적인 효과를 더해준다.
그러나 잔잔한 설명만으로도 감동받을 준비가 된 관객들은, 「연극은 신명나는 것에 정성을 올리는 마음으로 무대를 만드는 것」에 동의하고 있는 연출가와 작가의 생각에 완전히 빠져들게 된다. 예술의 전당이 기획한 「덕혜옹주」는 6월4일까지 토월극장에서 계속된다.<김희원 기자>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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