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춤협회가 주최하는 「95춤작가 12인전」은 「작가 12인전」이라는 약칭으로 매년 무용계의 주된 화제가 되고 있다. 장르와 계파, 연륜에 관계없이 지명도 있는 무용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수준 높은 작품들이 발표되기 때문이다.올해의 참가자들 역시 무용계의 대표적 인물들로 다양한 작품성향을 보였다. 그 성향들은 12인이 각기 춤이 인간의 옥체이며 기교이고 작품이라는 생각들중 어느 하나에 강조점을 두는데서 출발하고 있었다.
이연수와 함께 「여백기행」을 춤춘 박호빈의 신체는 그가 정지한 상태에서도 춤을 느끼게 한다. 문영철이나 김순정 역시 춤이 배어있는 악기(무용가의 몸)다. 이 경우에는 기교 역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인간의 몸이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은 고행과 견줄 수 있는 훈련으로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움직일 때는 살아있는 미세한 근육과 춤의 활력을 만끽하게 되고 무용가의 위대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춤의 활력을 몇십년간 지속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고전발레를 춤추는 무용가들이 초인적인 노력을 견디지 못해 일찍 은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다른 꽃 한송이」를 춤춘 김복희의 무대는 경이로웠다. 그리움이라는 일반적인 주제를 신비한 분위기로 연출한 탁월한 감각에서부터 이와 조화를 이루는 기량까지 예술가의 정도를 제시하는 듯하였다.
의식의 흐름을 보다 중시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에 몰두하는 경향은 황희연의 「환생일기」, 국수호의 「빈배」, 박인자의 「남 몰래 흐르는 눈물」에서 나타났다. 김영태시인의 시를 소재로 풀어나간 박인자의 분위기 묘사는 언어의 이미지를 움직임의 이미지로 전환시킨 본보기였다.
독창성을 위주로 한다면 김은희가 안무하고 춤춘 「바람의 여인」이 으뜸이었다. 굳이 작품의 뿌리를 밝혀야 한다면 그녀가 추구하는 춤은 이사도라 던컨이 이룩하지 못했던 이상향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김은희는 바람과 여인의 만남이 특별하지 않은 차원이 아니라 호흡과 연결되는 필연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풀밭에서 바람을 느끼는 여인의 상념은 몇천년의 시공을 자유로이 왕래한다. 궁중정재음악에 단발머리 하얀소녀가 서있다. 소녀는 시종일관 한자리에 서있다. 어려운 이 상념을 쉽게 관객과 공유했다는 점이 이 작품의 탁월함이었다.문애령 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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