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광주항쟁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구원을 되살리기 위함이 아니라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기능때문이다.”80년 5월 광주항쟁은 군부독재를 부정하고 시민항쟁을 통해 민주화를 우리 사회의 중심 이슈로 부각시킨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중 하나였다.
그러나 광주항쟁은 오늘날 망각돼가는 느낌이다. 언론이나 정부정책에서 광주항쟁이 표출한 지역차별 극복과 사회통합 문제를 찾기 어렵다. 다루어진다 해도 광주문제는 국지화하기 일쑤이다. 민주화의 과제가 이미 완성된 것인양 더이상 민주화에 의한 사회통합이나 권위주의 유산의 청산, 그리고 개혁과 부패일소라는 말은 세계화 슬로건에 묻혀 듣기조차 어렵다.
우리 주변에는 광주항쟁을 호남지역 주민들의 지역 불만표출의 결과쯤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군부 권위주의가 만든 정치·사회적 균열과 갈등의 중심에 놓인 호남문제를 지역감정·지역이기주의의 일반적 표출형태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같은 인식속에서는 호남이 왜 차별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의 근본적인 해결의지나 해답을 발견키 어렵다. 또 한국정치를 움직이는 강력한 힘중 하나가 호남지역 배제를 핵심으로 하는데도 왜 이를 은폐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문제는 지역이기주의와 광주항쟁으로 폭발한 호남문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투쟁, 신군부가 자행한 사태라는 두 측면이 있는 광주항쟁은 호남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군부독재가 배태한 우리 사회의 모순이 집약된 한국 전체의 문제이다. 군부독재는 특정지역을 포섭·배제하는 방법으로 과두적이고 폐쇄적인 정치인맥과 특정형태의 사회계층및 경제구조를 만들었다.
민주화는 이처럼 왜곡된 구조를 개혁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과정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바로 광주항쟁이 제기한 기본문제이며 우리 모두 실현해야 할 역사적 과제이다. 그러나 개혁을 진행한다는 오늘 우리는 사회통합보다 더 많은 지역분열로 치닫고 있음을 보고있다.
김영삼정부 초기 개혁에 대한 광주시민의 지지율이 70∼80%에 달한 데서 보듯 광주시민은 누구보다 열렬한 개혁 지지세력이었다. 이는 광주항쟁 정신이 지역 이해 집착이나 특정인 지지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보편적 민주화와 개혁에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광주의 정신은 곧 문민정부의 개혁정신인 것이다.
정부와 민자당은 광주의 정신을 기피하고 역사적 의미를 축소해서는 안되며 민주당도 이를 볼모로 대표성을 독점 향유하려 해서도 안된다. 민주개혁과 사회통합을 위해 이 모두는 퇴영적인 것들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당리당략 차원을 넘어 항쟁의 정신을 배워야 할 책무를 지고있다.
군부의 탈정치화, 재벌편중 경제의 완화, 노동에의 배려와 참여허용, 지역차별의 해소, 남북대립의 완화와 통일가능성의 제고등은 민주화과정에서 제기된 핵심 개혁사안들이다. 이런 중대사안들은 당장 해결될 수 없다 해도 그것이 보편적 문제로 존재하는 한 언젠가 다시 되살아 날 수 있다. 그러나 지역문제는 사회정치적 해소의 필요성이 엄존하는데도 현 정부하에서 더욱 악화되고있다.
우리가 광주항쟁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구원을 되살려 투쟁의식을 고취하기 위함이 아니라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기능때문이다.
6월항쟁과 민주적 개방을 가능케 한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정신과 자원이 광주항쟁에서 발원했다. 그리하여 민주주의가 있게 한 역사적 계기로 자리매김된다. 과거를 바로 알고 평가하는 문제는 오늘 민주주의의 기원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 지평에서 우리가 민주주의를 위해 과연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바로 인식하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
광주항쟁에서 발원된 민주화운동을 잇는 민주정부라면 광주항쟁을 역사적으로 올바르게 자리매김하고 그 정신을 실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정부출범 초기보다 뚜렷하게 개혁이 후퇴하고 있는 오늘 우리가 광주항쟁 15주년을 맞아 되새겨야 할 민주주의와 개혁의 정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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