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새 교복을 입어 보지 못했다. 경쟁이 치열했던 명문 S중학교에 입학했어도 물이 바랜 형들의 교복을 물려 입고 입학식에 참석해야 했다. 새카만 교복을 입고 온 다른 학생들 속에서 내내 속이 편하지 않았으나 나는 함께 온 어머니에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졸라봐야 될 일도 아니고 괜히 어머니의 마음이나 아프게 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중 1년생 치고는 꽤 궁량이 있었다고나 할까?이 일에 대한 나의 이해가 달라진 것은 내가 아이를 키워 교복을 사 입히게 되면서부터이다. 입학식 날의 어머니 마음을 나는 30년이나 지나서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 정작 나의 물 바랜 교복에 가장 마음 쓰렸던 사람은 어머니였을 것이다. 또 아무 말 없이 태연한 척했던 아들의 불편한 마음을 나의 어머니는 너무나 환히 들여다 보고 있었을 것이요, 오히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렸을 것이다.
가난 때문에 많은 어려움과 눈물, 상처가 생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가난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내가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이 컸더라면 교복 때문에 속상할 일도, 그 속상함을 참을 일도, 그 참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느꼈을 가슴 아픔도 없었을 것이요, 지금 내가 아이에게 교복을 입히게 되어서야 새삼스럽게 깨닫는 「30년 전에 나에게 베풀어진 어머니의 사랑」을 모르고 넘어갔을 것이다. 가난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껏 베풀지 못하고, 마음껏 베풀지 못하기 때문에 빚진 마음을 갖고, 빚진 마음을 갖기 때문에 더 잘해주고 싶고 더 생각하고…하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고 보면 가난한 사람에게 가장 큰 재산은 바로 사랑이다. 부자가 되어서도 이 재산을 그대로 지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과연 우리가 부자가 되어서도 가난한 사랑의 가슴 메어짐을 견디려고 할까? 풍요로운 어린이 날, 어버이 날을 보면서 가난한 시절의 사랑을 생각해보았다.<이건용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이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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