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시대 걸맞은 가치관 제시/생명출현 현상은 “우연”… 진화과정은 “필연”/기존의 세계관 정면도전 서구지성계에 충격「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우연과 필연의 열매다」 그리스철학자 데모크리토스의 이같은 명제로 시작되는 프랑스 분자생물학자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70년 출간)은 뉴턴의 물리학,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헤겔의 역사철학등 인류지성사를 이끌어온 「목적론적 세계관」에 대한 과감한 도전의식을 담고 있다.
「이상스러운 존재」, 「분자의 개체 발생」등 9장으로 이루어진 「우연과 필연」은 현대생물학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관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과학문명시대에 걸맞은 윤리관의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생명체는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인류는 어디에서 왔는가. 현대과학은 생명체와 인체의 중요한 성분등을 해명해 놓고도 생명의 출현과 인류의 탄생에 얽힌 신비는 밝히지 못하고 있다.
모노는 DNA구조와 복제기구, 유전암호 해설등 생물학연구를 토대로 『물질에서 처음 생명현상이 생겨난 과정은 우연적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연히 태어난 생명체는 그 자체의 필요에 따라 필연적 진화과정을 거친다. 즉 미시적 세계의 우연성이 거시적 세계에서는 필연성으로 바뀌는 것이다.
『우주와 인간은 우연과 필연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모노의 주장은 특정한 목적원리가 생명체에 작용한다는 「생기론」이나 생물권뿐 아니라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보편적 목적원리가 있다는 「물활론」과 정면 배치된다. 모노에 의하면 「우주, 인류, 역사의 우연성을 필사적으로 부인하려고」 노력해온 대부분의 종교와 철학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인간중심주의의 환상」에 빠져 있는 셈이다.
우주에는 목적이 없으며 신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냉엄한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인류는 스스로의 미래를 개척할 예지와 용기를 가질 수 있으며 그것은 과학적 지식에 기초한 윤리의 확립을 통해 가능하다. 『…현대사회는 과학이 가져다 준 부와 힘을 받아들여왔다. 그러나 과학의 심오한 메시지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거의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인간은 마침내 광대한 우주속에서 단지 홀로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운명이나 의무는 아무데도 씌어져 있지 않다. 인간은 혼자의 힘으로 「왕국」과 암흑의 나락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마지막장 왕국의 나락중)
「우연과 필연」은 자연과 사회를 목적론적 원리와 법칙으로 설명하는데만 치중했던 기존의 세계관을 정면으로 공격, 서구 지성계에 충격을 던지며 쉽지않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다. 국내에도 75년 고려대 김용준교수에 의해 소개돼 범우사, 삼성출판사등이 출간했다.
자연과학자의 철학적 성찰을 담은 저서를 자연철학자 데모크리토스의 명언으로 시작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특히 과학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없는 시대에 과학에서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내자는 주장은 지금까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모노는 누구인가/레지스탕스 가담/한때 공산당 입당도/사회문제 관심많은 불 분자생물학자
자크 모노(JACQUES MONOD·1910∼1976)는 화가인 아버지와 음악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1928년 파리대 이학부를 졸업하고 도미, 유전학을 연구했다. 그는 과학자이면서도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높아 2차대전중 레지스탕스에 가담, 프랑스 최고훈장 레종 도뇌르를 받았고 68년 파리학생데모때는 파리대,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재직하며 현실참여발언을 했다. 젊은 시절 공산당에 입당했다가 스탈린의 교조주의에 반발, 탈당한 경력도 있다.
모노는 단백질대사에 대한 연구로 생명의 기원을 밝힌 「오페론설」을 60년에 제창, 분자생물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65년 프랑수아 자콥, 앙드레 르보프등과 함께「효소와 바이러스합성의 유전적 제어에 대한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고 67년 이후 파스퇴르연구소장으로 일했다.<박천호 기자>박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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