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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상점들/김영성(서울에서 본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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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상점들/김영성(서울에서 본 평양)

입력
1995.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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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들로 꽉 찬, 곧지 못한 도로를 따라 끝없이 연속되는 상가들, 광고와 간판으로 성한데가 없는 건물의 벽면들, 사람들로 붐비는 보도, 이런 것이 내가 받은 서울에서의 첫인상이다. 내가 이 혼잡한 서울사회에서 「천만분의 일」의 지분을 갖게 된지 벌써 두해가 넘었다.처음 남대문시장을 찾았을 때는 이곳이 아라비안나이트에서나 들은 환상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상품이 넘쳐흐르니 통일이 되면 평양소매치기꾼들의 축재가 어렵지 않게 담보될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처럼 많은 상인들이 무엇으로 매상고를 올리는지 하는 의심도 들었다. 동일업종의 특정 지역군집현상을 보고는 업자들이 바보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좀 익숙해졌지만 상품의 품종과 규격이 너무 많았고 「끈질긴」 친절봉사를 외면하기가 참으로 거북스러웠다.

믿거나 말거나 평양에는 (지방은 더 한심하지만)쇼핑이란 말이 아예 없다. 상점이나 백화점을 구경거리로 간주하지도 않는다. 「사회주의 아래서 상업이란 주민공급이다」라는 수령의 명제가 지배할 뿐이다. 이십여년전부터 세대마다 구매카드가 지급되어 있고 연탄, 술, 담배부터 신발, 의류에 이르기까지 필수품목이 그 속에 들어있다. 그러나 품목은 고작 40종 미만이다.

그나마 물건이 없으면 그만이다. 평양시민의 경우 식량, 간장, 된장 외에 한달에 한두번 정도 구매카드에 적힌 배정품중 양말, 치약, 담배같은 것을 몇가지 살 수 있다. 배정표 없이는 빗, 머리핀, 손거울, 잉크 등을 살 수 없다. 그러니 평양시민들은 배정표를 더 얻으려고 인민반장과 상업관리소직원에게 빌붙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점은 대개 손님으로 붐빈다. 고객 대부분이 힘들게 통행증을 발급받아 평양에 올라온 지방사람들이다.

평양사람보다 출신성분에서 하위인 이들은 상점에 들어가선 매대를 에워싼다. 그리고 몇시간이고 인내성있게 판매원의 자비를 기다린다. 하루종일 기다려 향기없는 세면비누 한두장을 사게 된다면 큰 행운이다. 판매사원에게 감사해야 함은 물론이다.

상점이나 상업관리소는 권력기관 다음가는 인기높은 「벼슬자리」이다. 권력층의 자녀나 그의 부인들이 이 자리를 독점하고 있음은 당연하다.

그들의 눈에는 고객이란 하찮은 신분의 천시대상이다. 판매원들은 고객들에게 몸가짐과 얼굴표정을 통해 『시끄럽다. 어서 나가라』하고 말한다.

한산한 분위기와 초라한 저질상품을 보는 고객들은 『그럴 줄 알았다. 괜히 찾았구먼』하고 모멸감을 느낀다. 그러나 몇년만에 치약이나 비누, 양말을 보고는 좀처럼 매장을 떠날 수 없게 된다.

북한당국은 물건이 모자라 지역별 신분별로 차등지급을 해오다 지금은 평양시민에게만 겨우 몇가지 필수품을 공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품이 거래되지 않는 곳, 거래할 물품이 전무한 곳, 그래서 화폐유통이 없는 나라. 따라서 몇푼 안되는 노임도 회수할 길이 없어 지급날짜를 무단히 미루는 나라가 바로 북한이다. 그곳을 탈출한 망명자들이 남한 땅을 밟으면서 놀란 것처럼 거꾸로 북한의 현실을 수없이 들으면서도 믿으려 하지 않는 남한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약력

▲34년 평양출생 ▲프라하공대 건축학부졸업 ▲평양 국가건설위 설계사 ▲독일 튀링겐주 설계사무소근무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고문 ▲저서:「오, 수령님 해도 너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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