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4대TV 폭스사 여기자 윤경복씨/두 발이 최대무기 맹렬여성/무보수 견습1년 열정하나로 버텨/뉴욕 한흑갈등 심층취재로 두각/시소방국서 이례적 공로상 표창하오 10시 미국의 4대 TV방송 네트워크 가운데 하나인 폭스사의 저녁뉴스에 서는 서양인들 틈바구니를 헤집고 뉴스현장을 누비는 야무진 동양계 여기자를 볼 수 있다. 때로는 매섭게, 때로는 부드럽게 미국사회의 단면을 칼질하는 조그만 몸집의 이 여기자는 리포트 마지막에 『폭스뉴스 경 윤』이라고 또박 또박 한국이름을 말한다.
경윤(본명 윤경복·39)씨는 한국에서는 사회부라고 할 수 있는 종합취재부소속 기자로 강력범죄부터 화재와 문화행사에 이르기까지 뉴스가 있는 곳은 어디나 활동영역이다. 그녀가 정식기자로 활동해온 지난 3년이 물흐르듯 쉽게 흘러간 세월은 아니었다. 『아일랜드계가 장악하고 있는 뉴욕경찰에 관한 정보는 아일랜드계 기자에게 더 많이 전해질 수 밖에 없듯이 누구나 같은 피부색과 정서를 가진 사람을 도와주기 마련이지요』 때문에 그녀로서는 두 발이 가장 큰무기일 수 밖에 없었다. 최근 기자로서는 이례적으로 뉴욕시 소방국으로부터 공로상을 받은 것은 그녀의 이러한 열성을 취재원들이 인정해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무관으로 워싱턴에 부임한 부친 윤승국(윤승국·71)씨를 따라 6살때 미국에 온 그녀가 저널리즘에 매력을 느낀 것은 웨슬리대를 졸업하고 존스 홉킨스대학에서 국제경제학 석사과정을 밟던 때였다. 일본 마이니치(매일)신문 특파원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일은 큰 경험이 됐다. 졸업후 잠시 꿈을 접어둔채 월드뱅크에 취직했지만 6년간의 안정된 직장생활도 그 꿈을 완전히 지워버리지는 못했다.
87년 무작정 방송의 중심지 뉴욕으로 뛰어들어 수소문끝에 폭스방송국에 취직했지만 말이 취직이지 1년동안은 월급도 없었다. 저축한 돈을 까먹으며 마이크와 취재수첩 대신 커피와 타자기를 벗삼아 심부름을 해야 하는 생활에 회의가 없을 리 없었다. 그러나 『지금아니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열정하나로 버텼다. 일과후나 주말에는 방송국을 나와 기자들을 따라다니며 취재를 배웠고 카메라맨들을 졸라 리포트연습을 했다.
잊지 않고 간직해온 한국어는 견습기자시절인 89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한국계 야채가게들에 대한 흑인들의 대규모 불매운동이 벌어졌을 때 위력을 발휘했다. 방송국내에서 유일하게 한국어가 가능한 그녀의 심도있는 취재내용이 방송돼 호평을 받았다. 이때부터 그녀는 간간이 정규뉴스에 얼굴을 내비칠 수가 있었고 3년 뒤 마침내 정식기자가 됐다. 군소언론매체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뒤에야 중앙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이곳 풍토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뉴욕=김준형 특파원>뉴욕=김준형>
◎브라질항공 엔지니어 조성형씨/최첨단업체 유일한 동양계/상파울루공대 수석졸업한 실력파/설계·제작·시험비행 수행 정예요원/부사장 “한국 고성장 원인 알아봤다”
전세계 중소형 여객기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나라가 브라질이라고 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한국인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한국인들에게 브라질은 기계공업이 낙후된 나라라는 인식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라질은 40인승 내외의 중소형 여객기및 일부 군용기 제작분야에서 세계 정상급 수준을 보유하고 있다. 실제로 브라질은 중소형 여객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미국에서 34%, 전세계에서 30%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브라질이 중소형 여객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35년전 브라질항공회사(엠브라에르)를 설립, 항공산업을 정책적으로 집중육성해온 덕이다.
이처럼 엠브라에르는 브라질을 대표하는 최첨단 산업체에다 국가안보와도 직결된 기업인만큼 관련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갖춘 전문인력만 받는등 채용조건이 극히 까다롭다. 때문에 엠브라에르의 직원들은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다.
현재 엠브라에르의 5천8백명 임직원 가운데 동양인은 단 한명뿐이며 이 한명이 바로 한국인 조성형(43)씨이다. 62년 서울 상도국교 4학년때 육군중령으로 예편한 아버지 조남훈(72)씨를 따라 브라질로 이민온 조씨는 현재 항공공학 엔지니어겸 테스트 파일럿이라는 두가지 중책을 맡고 있다. 80년 브라질 최고 명문 상파울루주립대학 (USP) 공대를 수석졸업하고 바로 엠브라에르에 들어 간 조씨는 지금까지 이 회사가 생산한 모든 항공기의 설계 및 제작에 주요 멤버로 참여해 왔다.
83년에는 1년간 이탈리아에 교환 엔지니어로 건너가 양국의 항공기 제작 수준을 한단계 높이는데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엠브라에르의 오라시우 아라고네스 포르자스 수석부사장은 『세뇨르 조의 투철한 직업의식과 능력을 보고 한국이 오늘날과 같은 선진 공업국으로 발돋움하게 된 원인을 알 수 있었다』며 『특히 세뇨르 조는 AMX전투기 제작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그를 높이 평가했다.
그가 특히 돋보이는 점은 엔지니어외에도 11명에 불과한 테스트파일럿이라는 사실이다. 조씨는 이처럼 설계·제작은 물론, 시험비행까지 수행해 낼 수 있는 최정예 전문인력이라 할 수 있다. 비록 12살때 이민와 일반적인 한국교민들과 달리 브라질인들의 사회에서만 살아왔지만 그는 한국말과 한국풍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으며 한번쯤 한국의 항공산업을 둘러봤으면 하는 꿈을 안고 있다.<상파울루=김인규 특파원>상파울루=김인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