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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긍지 높이기 88올림픽 “절정”(광복 분단 50년: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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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긍지 높이기 88올림픽 “절정”(광복 분단 50년:30)

입력
1995.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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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치 국제스포츠대회/한국일보 59년 「9·28 수복기념 마라톤」 첫 개최/78년 세계사격선수권·86년 아시안게임등 잇달아88서울올림픽은 단군이래 한민족 최고 최대의 잔치였다. 서울올림픽은 160개국 13,600명이라는 사상 최대의 국가와 인원이 참가, 12년만에 동서진영이 함께한 「완전 올림픽」이었다. 당시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과의 관계개선등 외교면에서 크게 기여했고 우리문화의 세계화를 촉진시키는 역할도 한 올림픽은 체육면에서는 시설과 경기력에서 한국을 스포츠선진국으로 도약케 했다. 그러나 88올림픽까지 오는 길은 멀고 험했다. 81년 9월30일 하오 3시40분, 당시 서독 바덴바덴의 IOC총회에서 사마란치위원장이 역사적인 한국의 88올림픽 유치를 확정발표하는 순간까지만해도 한국은 국제종합대회를 한번도 치러보지 못했던 스포츠 후진국이었다. 해방후 국내체육계는 각종 조직의 정비와 대회의 창설 등에 매달려 있었고 47년 4월에 가서야 비로소 첫 국제대회(보스턴마라톤)에 참가할 정도여서 국제대회의 국내유치는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나 6.25 한국동란이후 전쟁의 상처를 씻어내면서 스포츠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욕구는 서서히 커져 갔다.

○54년 미 농구팀 초청이 효시

해외팀의 첫 초청경기와 첫 국제대회를 열어 국민들의 갈증을 풀어준 것은 한국일보였다. 한국일보는 창간직후인 54년 8월 10일 미국 오리건대학 농구팀을 초청해 연세대 농우팀 해병대팀등 3개팀과 경기를 열었는데 이는 50년대 붐을 이루었던 해외팀 초청경기의 효시가 됐다. 한국일보는 국내 첫 국제대회가 된 9.28 서울 수복기념 국제마라톤대회를 59년 창설, 당시 국민적인 마라톤열기를 한껏 북돋웠다. 이대회에는 세계적인 선수 7명이 참가했으며 61년 3회대회와 66년 4회대회에는 올림픽우승자인 아베베와 마모 월데가 참가,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마라톤대회로 인기를 끌었다는게 대한체육회 김성규 국제담당 사무차장의 회고이다.

이후 한국은 본격적으로 국제대회 유치에 나서게 된다. 국내에서 처음 열린 아시아규모의 국제대회는 60년 10월의 제2회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농구와 함께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축구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국제대회를 유치한 종목으로 꼽히는데 이런 인기에 편승해 71년 당시로서는 국내에서 제일 큰 국제대회인 박스컵(현 대통령배)축구대회를 창설했다.

○배승금 물고 반납… 망신도

축구를 선두로 한국은 탁구 야구 등 각종목에서 아시아선수권과 세계선수권 예선대회를 유치, 스포츠 국제화시대를 열었으며 각종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경제와 함께 스포츠도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이과정에서 한국은 58년 아시아야구선수권과 70년 아시안게임, 78년 세계역도선수권대회를 유치했다가 예산부족과 시설미비로 대회를 반납한 아픈 경험도 있다. 특히 70년 아시안게임은 선수의 안전과 대회의 평화분위기를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25만달러의 배상금을 물고 반납, 망신을 사기도 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경제와 스포츠발전이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면 한국스포츠를 선진화시킨 최초의 국제대회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평가받기 시작할 무렵인 78년 세계사격선수권대회였다. 74년에 사상 처음으로 세계선수권을 유치한 한국은 당시로서는 거액인 총 10억원의 예산을 들인데다 71개국 1,500명이 출전, 사상 최대의 사격잔치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이대회의 성공은 서울올림픽 유치로 이어진다. 자신감을 얻은 박종규 사격연맹회장은 79년 제25대 대한체육회장에 취임, 서울올림픽 유치구상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79년 10월 8일 정상천 서울시장이 내외신기자회견서 올림픽유치계획을 공식 발표했으나 10.26사태의 발발로 원점으로 돌아갔다가 5공화국들어 전두환대통령의 강력한 지원으로 본격적인 유치활동에 들어가 24회째 올림픽유치에 성공하게 된다. 올림픽유치로 국내스포츠는 또 한번 비약적인 발전기를 맞는다.

○2010년경 동계올림픽 계획

한국은 이를 계기로 86아시안게임을 유치했고 82년 세계 아마추어 야구선수권과 85세계양궁선수권대회등 굵직한 대회를 계속해 열어 경기력은 물론 스포츠시설과 안목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렸다.

역대 가장 훌륭한 올림픽을 치렀다는 극찬을 받았던 한국은 이제 동계올림픽과 동계 아시안게임, 동·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유치하면 국제종합대회는 모두 개최하게 된다. 이중 한국은 97년 동계유니버시아드와 99년 동계아시안게임은 이미유치에 성공했으며 2010년을 전후해 동계올림픽 유치를 계획하고 있다.

지금까지 동·하계올림픽을 모두 유치한 나라는 미국 일본 프랑스등 3개국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때쯤 한국은 스포츠 최선진국으로 도약할 것이다.<유승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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