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신문을 읽다보면 과연 신문을 읽는지 구문을 읽는지 분명치 않아 날짜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엄청나게 발전했다고 하지만 잊혀질 만하면 반복되는 대형 사건들을 대하면서 발전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가 과연 뭐였든가 하고 궁금해진다. 그러나 60년대 초에는 무너질 다리도, 폭발할 가스관도 별로 없었기에 사고 덕분에 발전을 실감할 수 있는지 모른다.그러면 발전한 나라들은 전부 그러한 빈발하는 대형사고를 겪는가. 물론 아니다. 물량적 발전은 우리 삶에 많은 혜택을 가져왔지만 일단 사고가 나면 대형의 것이 될 잠재력도 동시에 커졌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그만큼 세심한 주의가 곁들여진다. 따라서 여러가지 사고가 미연에 방지된다. 항공기 사고보다 자동차사고로 인한 사망자수가 훨씬 많다는 점은 바로 이러한 사정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각종 사고가 날 때마다 인재였음이 확인되었고 따라서 관련 책임자의 직무태만이 고발되곤 한다. 특정 책임자가 처벌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러한 일이 반복되어도 끊이지 않는 사고를 접하면서 우리는 그러한 부주의성이 특정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체질로 굳어져 있지 않는가 하는 의심을 갖게 된다. 그러한 사고의 소지가 우리 전부의 행동과 태도의 저변에 공통적으로 깔려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점은 사회 각 부문에서 하드웨어(물량적이고 기술적인 측면)는 엄청나게 변화하고 있는데 비해 소프트웨어(사고양식과 제도)가 따르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하는 불균형이라는 점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불균형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는 다 바뀌었는데 비해 사회를 이끄는 정치만은 지난 30년간의 주역들이 당분간 주역을 계속 맡을 것같은 점이나 여야가 교대로 국회에 출입하는 관행등에서 그 단적인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하기야 그러한 불균형이 4천만국민 전체의 공통된 사고와 행동양식 위에 서 있는 것이라면 정치인만 탓하기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그러한 불균형이 시정되지 않는 한 한두사람만의 조심만 갖고서는 새롭게 주어지는 문제의 해결은 고사하고 안전사고의 예방도 어렵게 느껴진다. 따라서 불균형의 시정은 초미의 작업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작업이 우선 시작이라도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불균형이 불균형으로서 널리 인식되어야 할 것인데 아직 그러한 인식이 일반화하였다는 징조는 아무데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로 그동안 이루어낸 물량적 발전을 토대로 자만심만 커졌고 따라서 불균형은 당분간 더 심화할 것같은 예감을 갖게 한다. 사실 그러한 자만심은 한때 어렵게 살 때의 열등감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취하는 졸부적 자세로 인해 더 강화하고 있다. 개인적인 것이든 집단적인 것이든 졸부적 자세는 동기면에서는 어려웠던 때를 애써 잊기 위해 취해지는 행동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열등감의 재확인 밖에 되지 않는다.
불균형이 인식되어도 그 교정이 또 어려운 것은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는 사회집단들의 완강한 자세 때문이다. 한때 우리는 서양의 개인주의를 비판하면서 우리의 전통적 공동체 정신에 대해 자부한 적이 있었다. 한때는 그랬는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 개인이나 집단 가릴 것 없이 낯도 붉히지 않은 채 드러내고 있는 대단히 낮은 수준의 공공자세를 보면 그러한 자부심은 자기기만이거나 착각이거나 아니면 그 전부다. 그렇지 않다면 왜 한때 원론적으로는 지지되던 사회개혁의 기치가 구체적 실천단계에서 이렇게 움츠러드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이런 위선이 만연되어 있는 한 불균형의 교정을 위한 공공투자나 개인적 희생은 기대하기 어렵다.
한 사회는 미리 정해진 목표점을 향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한 곳에 머물지도 않는다. 특히 불균형상태는 균형을 지향하게 마련이다. 물량적 발전에 맞춘 행동의 변화든지 아니면 뒤떨어진 행동에 맞춘 사회전반의 퇴보든지 양자택일을 강요당할 것이다.
일본이 비록 경제적으로는 대국이지만 그 배타적 문화―의식구조 때문에 세계지도국의 자격이 없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 이 점에서 타산지석으로 배운다면 모르겠지만 자위의 목적으로 이 주장을 신봉한다면 자존심있는 민족이 할 일이 아니다. 아예 영원히 2류국으로 머물 작정이 아니라면 우리를 뒤쫓거나 우리에게 쫓기는 여러 나라들이 다리의 붕괴와 가스폭발을 보고 겉으로는 위로하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안도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바짝 긴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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