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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졌으나 다시 태어난 윤동주/이탄의 「윤동주 연작」(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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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졌으나 다시 태어난 윤동주/이탄의 「윤동주 연작」(시평)

입력
1995.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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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상상력은 자연과 사회, 사물과 인간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는 안테나같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간혹 시의 본문에서 어떤 책과의 연관성을 발견할 때가 있다. 시인의 상상력이 현실보다 책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를 우리는 문학사에서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우리의 옛 시인들은 모두 「시경」과 「두시」를 외웠으므로 그들의 시는 저도 모르게 「시경」이나 「두시」와의 연관성을 보여주게 마련이었다. 시와 책의 이러한 연관성이 일방적인 것만은 아니다. 단테의 「거룩한 희극」은 「신학대전」에서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받았고 「신학대전」에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보태주었다. 「거룩한 희극」을 읽은 사람은 그 전과는 다른 눈으로 「신학대전」을 읽게 된다. 서정주의 「신라초」에는 「삼국유사」의 인물들이 마치 시인의 할아버지나 아저씨인 듯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고 박재삼의 「춘향이마음」과 전봉건의 「춘향연가」에는 「춘향전」 또는 「열녀춘향수절가」가 현대적인 의식의 흐름을 타고 변형되어 있다. 동학농민군의 항쟁과 4월혁명을 연관지어 묘사한 신동엽의 「금강」은 그 주제를 「사람의 마음과 하느님의 뜻이 서로 통할 수 있다」는 최제우의 「동경대전」에 의지하고 있다.「문학아카데미」 창간호에 실린 이탄의 「윤동주연작」은 전봉건이 「춘향연가」에서 사용한 방법으로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변형한 작품이다. 비할 데 없는 순수한 영혼의 기록으로서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부끄러움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 주었다는 점에서 윤동주의 이 시집은 충분히 문학적 발신자의 역할을 담당할 만하다. 윤동주는 1941년에 시집을 엮고 1943년에 독립운동이라는 죄목으로 후쿠오카형무소에 구금되었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윤동주는 혈장주사 대신에 식염수주사가 가능한가를 실험하던 규슈대학 생체해부사건의 희생자였다. 이탄은 식염수주사를 맞으며 감옥에서 죽어가는 윤동주를 「감옥 속에서 보낸/고향 속의 나」로 묘사한다. 그러므로 「윤동주연작」에는 1930년대의 간도와 1943년의 후쿠오카가 1948년에 출간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근거하여 결합되어 있다. 구속되기 전에 지은 시가 구속된 상황에 인용될 수 있는 이유는 당시 한국의 일반사정이 감옥에 흡사하였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리고 1943년의 윤동주와 1995년의 이탄을 묶어주고 있는 것은 이탄이 서정적인 것이라 일컫는 예수의 이적이다. 윤동주는 쓰러졌으나 믿음 속에서 「몸이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여준다.<김인환 문학평론가·고려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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