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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의 한(북한95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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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의 한(북한95년:6)

입력
1995.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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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동포 “남쪽 친척에 안부 전해달라”/혈육상봉 별따기… “뒷돈줘야”에 충격/“평축모집때 약속” 항의에 안내원 당황평축참관단의 최대관심사는 북한에 두고온 혈육을 만날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평축참관단의 대부분은 나이가 지긋한 분 들이었다. 이들은 죽기전에 한번만이라도 형제자매와 친척들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20시간이상을 비행기를 타고 평양에 왔다. 그러나 이들의 한가닥 기대는 무참히 깨어져야만 했다.

안내원들의 한결같은 얘기는 평축행사 참관에는 원칙적으로 이산가족상봉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했던 참관단들은 점점 불만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한 노인은『이럴려면 뭐하러 평양에 왔단말이야. 죽었으면 죽었지 동생을 보지 않고는 돌아갈수 없다』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심지어는 『정 못만나게 해주면 그동안 만나게 해주겠다던 약속과 그에관한 일들을 모두 불어버리겠다』는 협박의 소리까지 들렸다.

혈육상봉을 위해 북한의 관계자와 모종의 묵계를 하고온 사람들이었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거래내용」을 폭로해 버리겠다는 것이었다. 흥분한 사람들은 평축을 취재중인 외신기자에게 이사실을 알리고 특별인터뷰를 통해 북한의 비인도적인 처사를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했다.

여기에다가 이산가족상봉을 둘러싼 확인할수 없는 여러얘기는 분위기를 더욱 뒤숭숭하게했다.『누구는 어제밤에 만났다더라. 그리고 상봉을 하기위해 은밀하게 부탁을 했고 돈도 주었다더라』는 등의 밑도 끝도 없는 얘기들이 떠돌았다.

참관단들은 구경을 하고 저녁에 숙소에 돌아오면 호텔로비나 옥상의 스카이라운지등에서 이산가족상봉을 화제로 여러 얘기를 나누었다. 한가지 신기한 것은 상봉을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북한내 친척들의 최근주소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평양을 드나든 사람이나 중국연변의 아는 사람들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알아냈다는 것이다.

분위기가 심상치않게 돌아가자 북한측은 슬금슬금 물러서는 모습이 역력했다. 평양축전이나 끝난뒤 보자는 얘기가 안내원들의 입에서 나왔고 평양에 사는 이산가족은 만날수 있을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는 얘기도 나왔다.

이때문인지 평양의 마지막밤인 30일 저녁 자정이 다 되었을무렵 정장을 하고 커다란 트렁크를 들고 숙소인 양강호텔을 빠져나가는 몇사람의 참관단을 볼수 있었다.

기자는 북경공항에서 큰 가방을 5개나 지닌 한노인을 보았다. LA에 살고있다는 이노인은 북한에 살고있는 친척을 만나면 줄 선물을 준비하느라 가방이 이렇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바지를 4개나 입었고 티셔츠2장위에 점퍼를 입고 그위에 가죽점퍼를 입는등 윗도리만 7개나 껴입고 있었다. 이 노인네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친척을 만난다는 기쁨에 들떠 어쩔줄을 몰라했다. 평양을 떠나며 순안공항에서 이 노인을 만났을때 슬쩍 물어보았더니『어제밤(30일)동생과 형을 만났다』면서 『어머니를 못만나 평생 한이 될것같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서울로 돌아와서 들은『2천달러를 주면 특별상봉이 허용되었고 몇몇사람들은 몇백달러를 주고 상봉을 부탁했다가 돈이 적어 불발에 그쳤다더라』는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개성을 방문하던중에는 이런일도 있었다. 점심식사를 하러 민박촌에 들렀을때 미국에서 온 노인한분이 안내원과 심한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 노인네는 자신의 옛집이 민박촌 옆에있는 골목에 있는데 잠깐 가보자고 했다고 한다. 안내원은 이를 딱잘라 거절했고 이 노인은『세상에 이럴수가 있느냐』고 항의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안내원은『내 권한 밖이어서 어쩔수 없으니 나중에 보자』는 얘기만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이산가족상봉은 참관단만의 문제가 아니었다.혈육을 찾고자하는 심경은 북녘동포들도 같았다. 이름을 밝히면 불이익을 당할것같아 자세한 신분은 밝힐수 없지만 기자가 만난 한 북한사람은 자신의 친척이 경주에 살고있다고 이름과 주소를 적어주었다. 안부를 전해주고 미국에서 북한에 오는 인편이 있으면 그결과를 알려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북한측이 쏟아지는 비난속에도 이산가족상봉을 공식적으로 거부한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것 같았다. 우선 몇백명 또는 몇천명의 이산가족상봉을 주선할 여유가 없는듯했다. 이산가족 상봉에는 수많은 공안요원과 안전요원이 따라 붙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산가족상봉을 너무 많이 허용할 경우 북한주민들이 북한밖의 사정을 알게되고 그 결과 그동안 북한주민들에게 선전해온 일들이 허구로 드러날 가능성도 염두에 두지 않았나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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