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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들의 현주소(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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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들의 현주소(프리즘)

입력
1995.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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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토론토 취재출장중 만난 P군은 25세의 젊음이 싱그러운 한인 1.5세였다. P군은 그 나이의 젊음이 갖기 쉬운 치기라거나 가벼움이라곤 없는 청년이었다. 아버지의 자그마한 광고물 제작 공장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그는 생활의 파도에 쓸리고 씻겼을텐데도 심성이 추레하거나 정신이 누추하지 않았다.P군은 부지런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했고 주류사회에의 동화를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많은 한인 1.5세들처럼 그 역시 부모세대가 그토록 열망했던 「어엿한」전문직을 갖지 못하고 말았다. 자신의 탓이라기 보다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공장을 살리기 위해 엔지니어의 꿈을 버리고 대학을 중도포기해야만 했다. 80년대말부터 불어닥친 불황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부도 직전에 몰린 공장에서 그는 하루 18시간 일했다. 피어오르는 청춘도 짐스럽기만 했던 그 시절 P군을 지탱해준 가장 큰 힘은 벽안의 여자 동창생이었다.

고 3때 P군이 수학공부를 도와준 이 아가씨는 그가 대학을 다니느라 집을 떠나있는 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만나게 됐다. 공장일에 지친 그에게 시골출신의 이 백인 아가씨는 언제나 편히 쉴 수 있는 넉넉한 안식처가 돼주었다. 하지만 만남이 거듭되면서 P군은 또다른 번민과 싸워야 했다. 애써 외면해 왔지만 결코 피해갈 수 없는 문제가 성큼성큼 현실로 다가왔다. 집안에서 드러내놓고 반대는 하지 않았지만 하나둘 조건을 붙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P군으로선 간호사 일을 하면서 따로 시간을 내 한국말도 배우고, 가톨릭으로 개종해 6개월만에 영성체까지 받은 그녀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로 「쉬운」조건을 내건 부모님에게 감사했다. 이민 1세의 가장 큰 고민이 자녀의 결혼문제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P군은 음험한 그림자처럼 자신을 가위눌러온 파국의 예견에서 벗어나게 된 것만으로도 어깨가 가볍다고 했다. 서로 다른 삶과 문화의 접경에서 갈등하면서 이를 극복하려고 애쓰는 P군의 경우는 한인 1.5세들의 공통분모라고 할 수 있다.<뉴욕=홍희곤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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