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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사람들(북한 95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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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사람들(북한 95년:5)

입력
1995.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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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밖 사정 생각보다 많이 아는듯/이념·정치문제 빼곤 자유스런 분위기/백두산노인 “남한 자동차 잘만든다며”10박11일 동안의 북한체류기간에 가능하면 많은 사람을 만나려 노력했다. 북한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살고 있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우선 궁금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스탈린식 철권통치국가이고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국가라는 북한이 과연 그러한지도 알고 싶었다.

예상대로 기자의 노력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우선 안내원이 일반인접근을 막았고 호텔에서는 공안원이 우리를 감시했으며 호텔밖에는 사복을 입은 안전요원들이 경비를 했다. 기자는 평축기간에 5천여 외국인의 안내를 맡은 안내원은 6백명정도이며 이들은 관광총국과 해외동포영접국소속이며 상당한 기간 사전 특별교육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제한된 범위의 접촉이지만 북한실상의 단편을 추정할 수 있는 단초들은 그런대로 많았다. 안내원과 의례원은 물론이고 만났던 사람들은 김일성과 김정일체제등 민감한 정치적사안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얘기를 했다. 남북통일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당위성을 인정하면서 적극성을 보였다. 미국에 대해서는 비난을 했지만 그강도가 약해 마지못해 하는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어김없이 북·미관계가 잘 돼야한다는 대목을 빼놓지 않아 북한이 대미관계개선에 기울이는 관심을 알수있게 했다. 만난 인사들은 하나같이 남한의 김일성조문논쟁에 유감을 표명했으며 이를 남북대화를 냉각시킨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북한밖의 사정에 대해서는 알것은 다 알고 있는것 같았다. 단지 표현을 자제하는 것 뿐이지 않나 싶었다.

북한방문이 처음이 아니라는 분들은 북한의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져 있다고 말했다.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외부인을 접대하고 또 이들과 인간적인 얘기를 나누고 세상사를 논하다 보면 유연성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북한을 개방으로 끌어내는 길중 하나가 한 사람이라도 북한을 더 많이 방문하고 한 사람의 북한동포라도 더 많이 접촉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11일동안 일행을 안내한 안내원은 모두3명. 가장 젊은 이인철(33)은 해외총국소속으로 미남형의 얼굴에 영어를 잘했다. 그는 자신이 특별한 배경이 없는데도 해외총국에서 일한다는데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야 하는데 미제의 방해로 늦어지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북한과 미국의 회담결과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나머지 두명은 관광총국소속으로 조한석(52)씨와 백진수(40)씨. 조씨는 일행중 89년에 백두산을 등정한바있는 선우중옥(LA거주)씨를 안내하기도 했다. 선우씨와 조씨는 호형호제 하다시피 친해져 버렸다. 백씨는 부인도 안내원이었다.

북한에서 만난 사람중 인상에 남는 경우는 백두산의 삼지연공항에서 일행을 안내해준 60대초반의 노인과 삼지연과 평양을 오간 전세비행기 여승무원, 그리고 만수대창작소 매대에서 만난 판매원여성이다.

백두산의 노인은 일행이 탈 소형버스가 너무 낡았다고 얘기하자 『남한은 자동차를 잘 만든다면서…』라고 말했다. 함흥이 고향이라는 이 노인은 아들 둘이 모두 평양에 살고 있다는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전세기 여승무원은 24세였는데 고려항공국제선에 7년 근무하면서 도쿄 모스크바 베를린 소피아등 많은 외국도시를 가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남쪽이 쳐들어 오려 하기 때문에 조국(북한)이 어쩔수 없이 대비하느라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면서 『하루 빨리 통일이 돼 이 돈을 좀더 잘살수 있는데 썼으면 좋겠다』고 말하는것을 들었을 때는 아연할 뿐이었다.

만수대의 여성판매원은 매대의 그림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기자의 팔까지 끌어 당겼다. 정찰표가 붙은 물건값을 계속 깎아 주겠다고 하면서 그림을 사달라고 졸랐다. 어떤 때는 물건값이 정찰의 5분의1선까지 내려갔다. 기자는 북한돈 5천원(미화 2천6백여달러. 우리돈2백여만원)의 정찰이 붙어있는 그림을 결국은 5백달러에 샀다. 이 여성은 『조국을 위해서 열심히 그림을 판다』고 거듭 강조했다.

북한에서 만난 여성들은 단정하고 예쁜 용모에도 불구하고 손이 매우 거칠었다. 기자는 백두산의 향도역에서 만난 여성의례원들과 악수를 했을 때 이들의 손에 굳은 살이 박혀 있음을 알고 놀랐다. 그리고 금강산과 만수대창작사에서 만난 의례원과 판매여성, 그리고 심지어는 스튜어디스의 손도 매우 거칠었다.

이들의 손이 거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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