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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쓴 책들(장명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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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쓴 책들(장명수칼럼)

입력
1995.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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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추모하는 딸들의 책을 읽으며 5월을 보내고 있다. 성악가 김복희씨가 쓴 「아버지 팔봉 김기진과 나의 신앙」(정우사), 방송인 김세원씨가 쓴 「나의 아버지 김순남」(나남출판)은 험난한 역사속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담고 있다.팔봉 김기진(팔봉 김기진·1903∼1985)은 평론가·언론인·소설가로 한국문학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겼던 선각자다. 그는 20년대초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제창했고, 해방후엔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했고, 6·25전쟁이 터지자 공산치하에서 인민재판을 받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고, 문학적 열정을 긴 침묵에 묻은 여생을 살았다.

『한쪽의 이데올로기는 그의 과거를 무화시켰고, 다른 한쪽의 이데올로기는 그의 육체를 병들게 했던』(평론가 홍정선) 아버지의 삶을 김복희씨는 섬세하고 따뜻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는 역사의 풍파속에 큰 나무처럼 꿋꿋했던 아버지를 회고하면서 그 책을 팔봉연구의 한 참고자료로 내놓고 있다.

김세원씨는 아버지 김순남(1917∼1982?)을 회고할수 있는 행복한 딸이 아니다. 그는 아버지의 그림자를 찾아가는 과정을 책으로 썼다. 『김순남이 없었다면 한국의 현대음악사는 공허했을 것이다. 그가 월북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음악은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오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를 높이 평가하지만, 세살때 헤어진 월북한 아버지는 그에게 천형과 같은 존재였다.

88년 납·월북 예술인들에 대한 해금조치가 자신이 김순남의 딸임을 떳떳하게 밝힐수 있었던 그는 이미 북에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발자취를 찾아 러시아로, 일본으로 긴 여행을 시작했다. 모스크바의 차이코프스키 음악원과 도쿄의 구니다치음대에서 그는 아버지의 입학허가서와 악보등을 찾았고, 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는 아버지가 작사·작곡한 자장가에 눈물흘리며 「이승에서 인연이 없었던 아버지」의 영전에 그 책을 바친다고 쓰고 있다.

부모에 대한 딸들의 사랑이 더욱 애틋하고 각별한 것은 출가한 딸에게 친정과 부모는 항상 그리움에 대상이기 때문일까. 또는 생명을 낳아서 키우는 모성이 딸들의 사랑을 더 강인하게 하는걸까. 가정의 달에 읽는 딸이 쓴 책들은 역사의 굳센 기둥이었던 한국의 여성들을 생각하게 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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