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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날 특별기고/이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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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날 특별기고/이지관

입력
1995.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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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생명이 존엄” 자각과 공존의 철학 깨우침으로 정신의 청정영역 확대를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 인류의 큰 스승이 오신 날이다. 오신 뜻은 바로 일체생명이 평등하고 존엄하다는 깨달음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이다.

 오늘 우리의 삶은 그 분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뒤바뀌어 있다. 꼬리를 무는 대형사고, 무작위 인명살상, 과소비, 그에 따른 상대적 빈곤과 사회적 불안등 우리는 요즘 국민과 국토가 상처받는 총체적 위기에 처해 있다. 총체적 위기란 결국 절제하지 못하고 충돌하는 욕망의 집단적 포화상태를 의미한다. 그것은 마구 쏟아낸 우리들의 거친 욕망이 되돌아 와서 그 원인을 묻는 뼈저린 인과상응의 현실이다. 일체 생명체에 대한 존엄함의 자각이 배제된 무지한 인간의 모든 생각과 모든 행동은 근원적으로 욕망의 범주에 속한다.

 일상의 삶을 시작하는 일로부터 기업을 경영하고 정책을 입안하는등 모든 생각과 행위의 근본은 일체생명이 존엄하다는 자각에 기초해서 이뤄져야 한다.

 존엄에의 자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생사윤회하는 중생의 생존이 본질적으로 개체적 이기심과 욕망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며, 나아가 현대산업사회 또한 그러한 개인적 욕구의 성취를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본질적으로 욕망에 기초한 것들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문명이 발전한 만큼 그 밑으로 감춰졌던 잘못된 과정과 욕망의 결과 또한 거대한 중량으로 우리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몇 개의 카드나 패스포트를 갖고 다닌다. 이제 온 국민이 필수로 지녀야 할 패스포트가 있다. 바로 일체생명이 존엄하다는 자각이다. 존엄에의 자각을 기초로 반드시 실현해야 할 다음의 과제는 정신의 청정령역을 회복하는 일이다. 우리가 향유하고자 하는 맑은 환경은 인간의 청정한 의식과 비례한다. 즉 인간 마음의 청정이 환경의 청정을 결과하기 때문이다.

 경전에도 일심이 청정하면 일체가 청정하게 되고 국토 또한 청정하게 된다고 하였다. 인간을 위협하는 현상계의 더러움은 근원적으로 그것을 싫어하는 인간 자신의 욕망이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무절제한 욕망을 정화하는 정신의 청정영역이 넓게 분포해 있으면 거친 생존은 반조와 참회의 의례를 거쳐 존엄하고 순수한 존재로 회복될 수 있다.

 물이 사물을 정화하는 소극적 자정의 당위를 넘어 국민의 의식을 총체적으로 정화해가는 청정으로의 적극적 대용이 참으로 필요한 때다. 국민의 의식을 정화해나가는 일은 정화의 주체라 할 수 있는 종교인과 사회의 지도층이 먼저 자정의 참회를 솔선해야 한다. 국민정신의 청정영역을 확산시켜 나가는 일이 진정한 부국과 세계화의 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 또 하나 있다. 관용의 미덕으로 확보해야 할 공존의 철학이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 민족 종교간의 집단이기주의가 더욱 우리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국가와 민족의 안녕은 방어적 이기심으로 막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인 인류애, 나아가 일체생명에 대한 존엄에의 자각과 청정영역의 적극적 유대, 그리고 관용의 미덕으로 실현된 공존의 철학만이 우리 모두를 구원할 수 있다.

 부처님은 이미 2천5백년전 지구촌을 넘어 생명체 전체의 유기적 생존을 깨우치시고 공존의 궁극적 원리인 연기설을 천명하셨다. 일미진중함십방, 개체의 생존은 무한한 공간의 무한한 생존과 연결되어 있으며 일념즉시무량겁, 우리의 한 생각은 과거 현재 미래 무한한 시간으로 열려 있다는 것이다.

 부처님 오신날! 이제 문명의 진보라는 명분에 어리석었던 우리 인간은 그 분의 깨우침으로 참된 진보에 새롭게 눈떠야 하겠다.

<해인사 주지·가산불교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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