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은 모든것 무너뜨리지만 또한 창조와 가능성의 공간”/대담:임철순 문화1부장김지하(54)시인이 5일부터 한국일보에 새 칼럼을 연재한다. 칼럼제목은 「틈으로 본 세상」. 틈은 무엇이며 틈을 통해 무엇을 볼 수 있는가. 그는 격주 연재할 이 글에서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처방을 모색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시인, 생명운동가, 사상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현대문명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창의성과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복잡다단한 문제에 부딪친 우리 사회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일 이야기들을 쉽게 써나가겠다』고 말했다.<편집자주>편집자주>
◎주민자치 잘돼야 나라·사회·국민이 잘돼/「우애경제」로 계층간 격차 해소해 나가야
―「틈」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대구에서 발생한 폭발참사의 원인은 도시가스관을 건드린 때문이지만 그 이전에 가스관에 틈이 있었습니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새로 지은 아파트가 몇 년 안돼 금 가는 것도 틈 때문입니다. 입자구성이 아주 촘촘한 고체 안에도 작지만 입자와 입자 사이의 경계가 있습니다. 이 경계가 잠재적인 틈입니다. 틈은 열을 받으면 벌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이 변해가면 잠재적 틈이 벌어져 붕괴하고 무질서해진다는, 곧 모든 것이 생성·변화한다는 생각이 없고 살아 있는 것에 살아 있는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대응의 가까운 원인은 군사문화입니다. 하라면 무조건 하는 문화와 의식 속에서 날림공사등 껍데기만 있는 일이 무수히 이루어졌고 잠재된 틈이 벌어지면서 건물, 인간관계, 질서, 체계, 권위, 환경등 온갖 것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나는 그런 문제들의 치유를 위해 잠재적인 틈을 성찰하려 합니다』
―「살림의 철학」인 생명사상과 「틈」의 사상은 어떻게 연관됩니까.
『틈이 없으면 물질구성이 안됩니다. 그런데 생명은 무기물보다 그 틈이 더 크지요. 틈이 있어야 성장합니다. 빙하기를 거치면서 파충류는 절멸하고 포유동물이 살아 남은 것은 포유동물의 내부에 적응기제로서의 자유, 바로 틈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생명의 핵심이랄 수 있는 정신, 영성은 그 틈이 더 큽니다. 단언컨대 큰 정신은 엉성하고 작은 정신은 촘촘합니다. 나는 이 빈 틈이 점점 커지는 것이 생명의 역사라고 봅니다. 세계화도 우리 사회가 복잡하게 팽창하고 있다는 뜻이며 결국 틈이 많아지는 과정입니다. 이 틈은 처음에는 사고, 실수, 하자로 나타나는데 그 잘못 속에 들어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새 꽃눈은 반드시 빈 가지에서 트며 새 건물도 도시의 주변부 빈 자리에 들어섭니다. 새 일은 정신의 빈 자리인 틈에서 생겨난다고 생각합니다』
―틈은 사회적으로는 하자, 흠결로 나타나지만 생명이나 인간정신의 측면에서는 가능성이나 창의성이라는 뜻으로 이해되는데 그 모순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빈틈없는 사람을 높이 평가하지만 원래 우리 민족은 과학이나 이성적인 것에는 그다지 맞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미의 특징은 잘 생기거나 똑똑한 것이 아니라 엉성하면서도 구수한 것,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질서의 멋입니다. 정은 곧 무질서의 교감상태입니다. 우리 사상중 한사상은 크다는 뜻과 작다는 뜻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무질서이며 역설이지요. 틈은 탈중심, 다핵구조로 연결됩니다. 원래 우리는 틈이 많고 그래서 엉성하고 다핵구조와 다원주의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것이 새 시대를 맞는 우리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틈은 근대에는 하자가 됐지만 탈근대시대에는 가능성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통일일 것입니다. 통일문제에 대한 견해를 들려주십시오.
『국가와 시민이 역할분리를 인정, 상호 보완해 나가야 합니다. 국가는 경수로문제등 현안을 중심으로 북의 개혁과 개방을 유도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찬 바람보다 따뜻한 햇볕이 좋습니다. 시대의 대세는 남의 저울눈이 북보다 높고 북한은 고집스럽게 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정부는 오히려 자기를 조금 낮추면서 북을 부드럽게 싸안고 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시민들은 자립적 사회·경제·문화자치운동을 통해 지역간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개성을 존중하고 지역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연대를 통해 정치를 비판하고 중앙정치에 개혁방향을 제시하는 세력을 형성해 가야 합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북에 시민세력이라 할 수 있는 세력이 형성돼 남북간에 보편성을 가진 시민세력의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연대가 이루어져야 통일이 가능할 것입니다』
―문민정부시대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초기의 개혁은 긍정적이었습니다. 기본청사진이나 프로그램이 없는 점이 문제였지만 과거 잔재와 부패구조 청산, 특히 군민주화, 군벌 해체는 인정해야 할 성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개혁의 예봉이 점점 둔화하면서 보수회귀경향이 보입니다. 세계화를 내걸고 추진하고 있습니다만 그 추진주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화는 대세이지만 WTO(세계무역기구)체제로의 편입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서구선진국을 추종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나름의 독특한 창조적 역량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풀뿌리민주주의를 활성화하고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보장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건전한 지방자치가 뿌리내릴 수 있다고 보십니까.
『노력을 하겠다는 전제아래 낙관합니다. 주민자치가 잘 돼야 나라와 사회, 국민의 생활이 잘되고 민족통일의 기초역량이 마련되며 동북아 새 문명의 창조가 가능해집니다. 지금의 정치구조는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가 되고 있으며 중앙정치가 지방정치를 종속시키려 하고 지자제선거를 총선의 볼모로 삼으려는 경향도 보입니다. 그러나 부천같은 지역에서는 시민후보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싹이 커져 다음 선거에서는 시민·무소속돌풍이 불 것입니다』
―요즘은 재야세력이 설 땅이 없다고 말합니다. 스스로 재야인사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재야라는 말을 봉건시대에나 맞는 우스운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은 민초라고 부릅니다. 요즘은 광범한 주민·시민세력이 나타나 성장·확대되고 있습니다. 주민 개개인의 성장과 비판적 정치세력으로서의 시민권력의 등장은 좋은 조짐입니다. 종전에 재야세력으로 분류되던 사람들은 정치권에 들어가 개혁역량을 발휘하거나 시민·주민들에게 활동역을 보태든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계층간·지역간갈등은 여전합니다. 해결책이 무엇이겠습니까.
『지역차원의 자립을 돕는 새로운 경제를 시도해야 합니다. 첨단 테크놀로지와 지역성의 결합으로 지역내 빈부격차를 좁히는 협의(협의)체제를 이루고 계층간 격차를 해소하는 우애(우애)의 경제가 나타나야 합니다. 공동체로서의 지역과 시장의 상호 보완성을 살려야 합니다』
―틈의 사상이 시쓰기에는 어떻게 반영되고 있습니까.
『말의 절약입니다. 말과 말, 연과 연, 행과 행 사이를 벌림으로써 말로 드러낼 수 없는 원이미지가 스스로 드러나게 해 독자의 상상력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주려는 것이지요. 당의 시인 유종원이 자기 문장의 제1기법이라고 말한 「소지욕기통:성글게 하여 통하게 만든다)」과도 비슷합니다』
―젊은 문학인들에 대해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겠군요.
『말과 이미지가 너무 많습니다. 그들은 빈 틈을 못 견디는 것같고 작품이 문학이라기보다 기호나 정보로 전락해버린 인상입니다. 기호의 상품화는 시의 타락을 가져올 것입니다. 적절한 절제를 통해 독자의 상상력이 개입할 틈을 주는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 필요합니다』<정리=김범수 기자>정리=김범수>
◎김지하씨 약력
▲41년 목포 출생. 본명 김영일
▲59년 서울중동고졸, 서울대 미학과 입학
▲61년 통일운동 주도로 지명수배
▲64년 한일회담 반대운동으로 투옥
▲66년 서울대 졸업
▲69년「서울길」등 5편의 시로 등단
▲70년 담시「오적(오적)」 발표. 반공법위반으로 투옥.
▲72년 담시「비어(비어)」 발표. 마산결핵요양원 강제 연금
▲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투옥돼 사형선고. 무기로 감형
▲80년 형집행정지로 석방(84년 사면복권)
▲저서=황토, 타는 목마름으로, 애린, 이 가문 날에 비구름, 별밭을 우러르며 김지하시전집, 중심의 괴로움(이상 시집) 대설 남, 밥이야기, 동학이야기, 남녘땅 뱃노래, 살림, 옹치격, 틈(이상 산문집)
▲로터스상 특별상, 세계시인대회 「위대한 시인상」, 크라이스키인권상, 이산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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