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망명자의 서글픈 인생행로 잠들었던 시간의 향수 일깨워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요즘 거의 책을 읽지 못하고 지낸다. 변변치 않은 글과 책 원고를 쓰고 강연을 하는 일은 자주 있는데 정작 남이 쓴 책을 읽는 일은 드물다. 겨우 읽는다는 것이 의무적으로 잡게 되는 전문 학술서적이나 논문들뿐, 신문의 광고나 신간안내에서 눈을 끄는 많은 책들을 구해서 읽을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다. 어찌어찌해 손에 넣게 된 책들도 시간을 내서 읽겠거니 하고 쌓아두었다가 대개는 제대로 훑지도 못하고 서가에 꽂아두고 말게 된다.
이 책도 이렇게 쌓아두었던 책중에서 우연히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독파」할 엄두는 내지 못했지만 며칠에 걸쳐 군데군데 읽다보니 결국 다 읽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저자가 나와 동갑이고 나보다 1년 늦기는 했지만 중학부터 대학까지 같은 곳들을 다녔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
물론 책머리 「빠리에 오세요」라는 제목의 서장은 일단 흥미를 끌었다. 특히 파리에 와서 하지 말라고 저자가 권하는 것들이 대부분 내가 파리에 가서 이미 해버린 「짓」들이라는 사실은 재미있었다. 그러나 다음에 읽게 된 그의 과거회상 부분이 잠들어 있던 나의 향수―장소가 아니라 시간에 대한 향수―를 일깨웠다. 바로 이런 향수의 느낌이 나로 하여금 책의 남은 부분을 더 관심을 갖고 읽게 했고, 그것은 차츰 내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비슷한 등·하교길에서의 똑같은 장난, 비슷한 관심과 고민과 꿈, 심지어 공대를 다니면서 전공에 흥미를 붙이지 못했던 일까지, 겉으로 보기에 나와 거의 같은 경험을 하고 있던 그가 그후 이끌게 된 삶은 나와는 엄청나게 다른 것이었다. 그도 결국은 전공을 바꿨고, 나와 같은 나이에 결혼했고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두기까지 했지만, 그런 표면적 비슷함 속에 그가 겪은 경험들은 내게는 얼마나 생소한 것인가? 그와 내가 이런 다른 삶을 살게 된 것은 무엇때문이었을까? 양쪽중 어느 한쪽이 빗나간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렇다면 그 빗나감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이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가 담담하게 그리고 있는 파리에서의 그의 삶의 여러 모습에 나 자신을 집어넣고 그의 상황을 제법 절실하게 느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신의 실제 느낌과는 아주 다른 것이었으리라. 내가 관광객으로 즐겁게 찾아갔던 파리에서 한국에 돌아갈 길이 막힌 채 택시운전을 하면서 그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삼십년전 등교길이나 교정에서 몇번이고 마주쳤을 텐데도 아직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인 저자를 파리가 아닌 서울에서 한번 만나 이런 것들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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