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시어로 쏟아낸 삶과 자연의 관찰 2제/사라지면서 드러나는 여백의 이미지 주목∼「길…」/주변사물에 내면세계용해 상실·비애 노래∼「지금은…」봄볕이 몸과 마음을 달뜨게 하는 이 계절에 자연과 우리 삶의 터를 투명한 눈으로 관찰해온 두 시인이 새 시집을 선보였다. 중견시인 오규원(54)씨가 4년만에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를, 첫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으로 김수영문학상을 받은 장석남(30)씨가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을 문학과지성사에서 같이 내놓았다.
두 시집은 우리 곁에 너무 가까이 있어 무심하게 지나치는 길, 물, 하늘, 꽃등을 소재로 삼고 있다. 하지만 그 자연을 서술하는 방법, 사물이 시인의 마음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거리, 그 사이를 응시하는 태도는 서로 다르다.
오규원시인은 주위에서 눈여겨 본 것들을 수사나 감정의 노출없이 소박한 일상어로 풀어놓는다. 시인의 관찰은 「대방동의 조흥은행과 주택은행 사이에는 양념통닭집이 다섯, 호프집이 넷,…자동판매기가 넷」 있다는 엉뚱한 집요함에서부터 「창을 받으며 거울 앞에 서 있는」 내가 그 창을 통해 하늘과 언덕을 안겨 받는다는 명징한 스케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관찰을 통해 여러 사물과 그 모습을 범상치 않게 배열하거나, 원래부터 있었지만 자잘한 것들이 사라지면서 드러나는 여백의 이미지에 주목하면서 사물의 총체성을 드러내려 한다. 가지가 서너 개 잘린 나무를 보고 「그 자리에는 가지 대신 투명한/공기가 가득 뻗어 있다」라고 한 표현은 눈 앞에 보이는 것을 훨씬 넘어선 곳으로까지 시인의 시선이 뻗어 있음을 엿보게 한다.
존재의 내밀한 원리를 법으로 이름붙인 시인은 존재와 사물의 거대한 연관성을 시집의 마지막 시 「탁탁 혹은 톡톡」에서 놀랍게 통찰하고 있다. 「내가 무심코…손가락으로/책상을 탁탁 혹은 톡톡 두들긴 그 소리는/봄에 닿거나 여름에 닿거나 가을/겨울에 닿는다 순간 이 지구에서/수백 년 동안 일어난 일이 없는/진동의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나비가 난다 아니 비가 오고/자작나무와 느티나무 잎이 썩는다//…그 소리는/중국의 서안이나 미국의 텍사스나/인도의 갠지스강에서도 순간/탁탁 혹은 톡톡 울린다 그래서/서안에서는 궁궐의 한쪽 문이 열리고/텍사스에서는 주유소가 새로 생기고/갠지스강에서는 시체 하나가 떠내려간다」
오시인과 비슷한 소재들을 이용하면서도 장석남시인은 그것들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정서를 드러내는데 더 주력하고 있다. 우리 주위의 여러 사물을 통해 상실과 비애의 심경을 봄밤과 같은 조용한 마음으로 노래한다.
때때로 「나의 시는 세월 속에/그렁그렁하게 연못을 팔 뿐」등 직접적인 묘사로 감정의 과다한 노출을 보이기는 하지만 「길이 보이지 않는다 나를 버리고 자꾸/어디론가 숨었다…/시린 새벽달이 떴다 떠서,/잃은 길을 적셨다/달빛 아래 모든 길을 버리고/깊이깊이 냇물 소리를 내며 집으로 갔다」는 표현처럼 청량하고도 슬픈 정경에 묻힌 고독한 개인의 모습이 잘 드러난 서정적인 시편들이다.<김범수 기자>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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