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기·미대통령임기와 적잖은 함수관계/또온다는 보장은 없어… 도약기회 마지막인셈「엔고는 10년마다 한번씩 찾아온다」
최근 맹렬한 속도로 치솟고 있는 엔화가치 폭등현상을 두고 「엔고 10년주기설」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달러의 신화」가 깨지기 시작한 70년대이후 엔화가치는 거의 10여년 주기로 한번씩 급등했다는 얘기다. 엔고가 우리 경제에 더없는 호기인 점을 감안할 때 「엔고 10년주기설」을 돌려 말하면 한국의 도약기회도 역시 10여년에 한번씩 찾아왔음을 유추할 수 있다.
최초의 엔고는 지난 71년부터 5∼6년간 다소 길게 진행됐다. 71년초만 해도 달러당 3백60엔대에 달하던 엔화의 대미달러환율은 그해말 3백20엔대로 가라앉더니 73년엔 다시 2백60엔대까지 고꾸라졌다.
까닭은 「닉슨쇼크」로 일컬어지는 71년 미국의 금태환정지조치. 당시까지 미국은 중앙은행에 예치된 금액수만큼만 달러를 찍어냈고 가장 안전하고 환금성강한 금에 연동한 탓에 달러 역시 구매력과 안정성이 가장 높은 기축통화였다. 그러나 미국은 이같은 금의 양에 제한된 달러공급으론 월남전등 막대한 군사비지출을 감당할 수 없었고 결국 금없이도 달러를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도록 금태환제도를 포기했다. 이는 곧 달러가치의 하락, 즉 「엔화의 부상」을 뜻하는 것이었다.
두번째 엔고는 약 10년뒤인 85년에 벌어졌다. 서방선진국(G7) 재무장관들은 뉴욕 플라자빌딩에 모여 파상적 엔화절상공세를 담은 「플라자합의」를 이끌어냈다. 달러가치를 떨어뜨리고 엔화가치는 절상시켜 연간 5백억달러가 넘는 일본의 무역흑자를 줄이겠다는 의도였다. 이에따라 엔화환율은 85년초 달러당 2백50엔대에서 이듬해말 1백58엔으로, 87년말엔 1백21엔대로 절반이상 평가절상됐다. 이같은 엔고, 즉 달러약세는 저금리 저유가와 맞물리면서 이른바 「3저시대」의 막을 올리게 됐다.
세번째 엔고는 지금 진행중이다. 클린턴행정부 출범이후 미국은 막대한 「쌍둥이(재정·무역)적자」축소를 위해 대외통상압력을 강화하기 시작했고 그 최대 타깃은 역시 일본, 수단도 역시 엔화절상압력이었다. 일본의 무역흑자는 줄이지 못했지만 결국 93년초 달러당 1백24엔대에 있던 엔화환율은 지난해 두자릿수대에 진입하더니 현재 80엔대마저 붕괴시키고 있다.
물론 70년대이후 엔고는 달러가치하락과 맞물린 일련의 기조였고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엔고는 평소엔 완만한 속도로 진행되다 70년대초∼중반, 80년대중반, 그리고 90년대중반등 거의 10년단위로 3차례의 결정적 분수령을 겪어왔다.
「엔고 10년주기설」은 경험적 현상일뿐 이론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법칙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10여년마다 진행된 엔고는 세계경기순환이나 국제정치역학관계의 변화, 특히 미대통령임기(4년 또는 8년단위로 교체)와 적지 않은 함수관계를 맺고 있다는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70년대 엔고는 붕괴되는 양극체제의 산물이었고 80년대 엔고는 레이건행정부의 감세정책(레이거노믹스)실패, 즉 쌍둥이적자를 해소하려는 정책적 결과였으며 현재의 엔고 역시 12년만에 집권한 미민주당정부의 새로운 대외경제정책의 산물이라는 시각이 많다. 「10년」이 단지 우연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엔고가 10년마다 오는 것이라면 우리 경제도 10년마다 기회를 맞는 셈이다. 물론 70년대초 후진국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던 우리나라로선 감히 엔고를 기회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80년대중반 엔고는 도약의 결정적 기회였지만 정부 기업 국민 모두 「샴페인만 터뜨렸을 뿐」 외형적 성장의 열매를 건실한 산업구조전환의 거름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지금 상황으론 10년후 엔고가 또다시 온다는 보장은 없고 설령 온다 해도 기다리기엔 너무 긴 시간이다. 결국 10년만에 도래한 지금의 엔고가 우리에겐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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