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전원풍경속 혁명의 아픔 절절히/「태양에 타버려」로 올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올 아카데미외국어 영화상 수상작인 러시아영화 「태양에 타버려」(BURNT BY THE SUN)는 조국이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죄과에 대한 니키타 미칼코프감독(NIKITA MIKHALKOV·49)의 참회록이다.
스탈린의 공포정치가 소련을 피로 물들이기 시작하던 1936년 여름 어느 날.볼셰비키혁명의 영웅 세르게이 장군(니키타 미칼코프)과 그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 마르시아, 깜찍하고 맑은 어린 딸 나디아(나디아 미칼코프·감독의 친딸)가 있는 평화로운 시골별장에 친척과 친지가 모여든다.
세르게이 가족의 나른하도록 풍요로운 하루는 적기와 표어, 취주악, 대형 스탈린 초상화를 매달 기구를 제조하는 망치소리 같은 불길한 징조들에 의해 위협을 받는다.
모든 것이 다 옛날 같지만 사실은 무서운 변화가 옛 것을 먹구름처럼 덮고 들어오는 것이다. 목가적인 세르게이가족의 생활에 10년전 동네를 떠났던 드미트리가 불쑥 나타나면서 장군집의 평화는 혁명의 배반적 태양에 불타버린다.
드미트리는 마르시아의 옛 애인. 처음에는 그를 손님으로 받아들인 세르게이와 드미트리 간에 긴장이 감돌고 시대 변화를 자각하지 못한 장군은 통곡한다.
낭만적 터치로 아름답고도 밝게 그린 풀빛 풍경화같은 작품이어서 그안에 담긴 비극이 더욱 충격적이다. 미칼코프(각본도 씀)는 사랑의 이야기와 함께 구세대와 새로운 것간의 충돌과 옛 것에의 동경을 조는듯 고요히 묘사하면서 혁명의 배신적 과오는 모든 러시아인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있다.
로맨티스트 미칼코프는 안톤 체홉의 따뜻한 태양이 내려쬐는 서정적 전원세계의 분위기를 환기해 내는데 탁월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또 다른 체홉적 성질인 체념적 비감을 내포시키고 있다. 그의 인물들은 섬세하고 우아하며 상냥하다. 「태양에 타버려」와 체홉의 단편소설들을 바탕으로 한 「검은 눈동자」(87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는 미칼코프의 이런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영화이다.
현존 러시아감독 중 국제적으로 가장 잘 알려졌고 성공한 미칼코프는 족보가 톨스토이와 캐더린여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귀족집안 출신이다. 조부와 어머니는 각기 화가와 수필가였고 시인인 아버지는 구소련국가 가사를 쓴 사람이다. 미칼코프가 공산체제 하에서도 정부와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존엄성과 활동을 유지할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재질과 결의 외에도 이같은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칼코프의 형 안드레이 미칼코프 콘찰로프스키(탈주열차, 마리아의 연인, 탱고와 캐시)도 감독으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다 지난해 조국으로 돌아갔다.
모스크바태생인 미칼코프는 어려서부터 극단에서 연기수업을 받았다. 학생 시절부터 연극과 영화에 출연하며 스타가 됐고 모스크바의 국립영화학교에서 감독수업을 받았다.
감독으로서 국제적 명성을 얻은 것은 두번째 작품 「사랑의 노예」(76년)였다. 「오블로모프」(88년)와 92년 두번째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오른 「에덴의 근처」는 또 다른 대표작.
미칼코프는 여지껏 정치문제는 피해 왔으나 공산체제 붕괴 후 부쩍 정치적이 됐다. 그는 스스로를 슬라브 민족주의자요 복고왕정파라면서 옐친을 서슴지 않고 공격한다. 형과는 달리 천편일률적인 영화를 만드는 할리우드에서는 일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미주본사 편집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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