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TV를 통해 북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다. 평양축전을 전후해 북한의 모습이 TV에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TV에서 북한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유심히 살피는 것은 북한동포들의 얼굴 표정이다.북한 TV 프로그램들은 100% 전략적인 「가공, 연출」에 능하기 때문에 화면에서 보이는 그들의 표정은 일단은 밝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 푹 팬 주름살… 이같은 모습은 남한의 나이많은 층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 별다른 이질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최근에 북한을 방문한 인사들의 방문소감 역시 대체로 평양의 모습은 비교적 온화하고 사람들의 표정도 생각보다 밝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북한동포들의 모습에서 배고픔과 일에 시달리는 고통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다. 나의 이같은 느낌은 얼마전에 북한에 잠행한 기자의 발언에서도 확인되었다. TV에 나오는 북한동포들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그렇지만 귀순자들의 이러한 느낌은 남한 사람들에게 그렇게까지 신뢰감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귀순한 나에게 주변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어오는 것중의 하나가 북한의 식량사정이다. 『정말로 하루에 두끼밖에 못먹느냐』 『그렇게 못먹으면 왜 데모한번 일어나지 않느냐』 『당신네 귀순자들이 기자회견때 하는 말이 신빙성이 있느냐』는 등이 단골질문이다. 「솔직한」 이야기를 유도하려는 여러시도가 뒤따르는 것은 물론이다.
내가 아무리 진지하게 대답을 해도 그들은 내말을 100% 믿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기자의 북한 잠행기가 나오자 그때서야 조금은 믿으려 하는 것 같다.
나는 귀순자의 얘기는 믿지 않으면서 기자의 잠행기는 믿는 이유를 가치관때문 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자라고 배운 환경에서 굳어진 가치관으로만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게 인간의 습성이기 때문이다. 자기와 같은 「부류」의 사람의 말에만 믿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가치관의 차이 때문에 TV를 통해 보이는 북한의 모습은 밝으며 북한 역시 사람이 사는 사회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며칠전에 평양문화축전의 준비모습이 TV에 방영되었다. 북한은 모내기가 한창일때인 지금이 식량사정이 가장 어렵다.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채소라도 많아야 될터인데 겨울내내 허기를 달래주던 김치마저 떨어져 가는게 북한의 실정이다. 시금치, 옥수수밥이 유일한 식량인 셈이다.
거기다가 축전행사연습이다, 대청소다해서 몇달전부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볶아댔을 것이 보지않아도 눈에 선하다. 그 뿐이랴. 외국인과의 접촉때 할 대화내용을 암기학습하고 시험까지 쳐대니 그야말로 배고프고 힘들고 골치아파 파김치가 돼 있을 것이다. 행사에 동원된 평양사람들은 그렇다치고 농사일에 동원된 사람들은 행사동원인원만큼 「공수(작업량을 평가하는 기준)」를 추가로 벌어여하니 오죽 힘들겠는가.
TV를 끄고 눈을 감으니 춘궁기를 어렵게 살아가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에 잠이 오지 않는다. 김정일은 프로레슬링 구경으로 북한사람들의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풀 수 있다는 망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동자의 날인 5·1절을 맞아 자칭 노동자계급의 「수령」이라는 김정일이 오늘 하루만이라도 입버릇처럼 외우던 이밥에 고기국을 먹여줄 생각을 왜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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