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착때 협의강화” 등 실천전무/점검도 형식적… 일터지면 발뺌대구 지하철 가스폭발 참사는 정부의 종합적인 안전사고 예방의지와 능력에 새삼 근본적 회의를 낳았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서울 아현동 가스폭발사고 직후 유례없이 광범한 가스사고 방지대책을 마련했다. ▲도로 굴착시 사전협의 강화 ▲지하매설 가스관 실태조사 ▲무자격자 하도급금지 법제화 ▲주요 가스기지에 대한 원격감시체제 확립 ▲가스안전 특별교육제도 도입 ▲중고교 교과에 가스안전교육과정 신설등이 당시 발표된 주요 내용들이다.
그러나 이 대책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탁상공론에 그쳤고, 실제 이뤄진 것은 전혀 없다. 먼저 각종 공사를 위한 도로 굴착시 가스관등 지하 매설관을 관리하는 기관과 굴착 공사주체간에 사전협의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 각종 공사현장 실무자들에 의하면 가스관등이 굴착공사장 지하에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부터가 해당 기관과의 유기적 협조에 의하기 보다는 굴착공사를 하는 측의 「경험」과 「감」에 의존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정부는 사전협의를 의무화하기 위해 도시가스사업법과 건설기술관리법등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공언했으나 말로만 그친 상태다. 이에 따라 당국의 감독도 형식적일 수 밖에 없다. 여전히 가스관 관리기관이나 행정기관의 감독이나 감시없이 마구잡이 굴착공사가 도처에서 이뤄지고 있다.
지하 매설물의 실태파악을 위해 도입하겠다던 「지리정보시스템」도 아직 구체적 실행계획조차 없다. 안전점검을 실시하지 않는 공사책임자를 처벌하는 법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
한국가스공사에 24억원의 예산을 배정, 주요 가스기지에 대한 원격감시체제를 갖추고 안전순찰 차량을 늘리기로 한 계획도 공허한 약속으로 남아있다. 한마디로 정부가 한 것은 관계부처를 다그쳐 종이위에 그럴듯한 대책을 나열해 발표한 것 뿐이라는 얘기다. 후속조치를 챙기는 사람도 없고, 그럴만한 관심이나 정성도 없는 셈이다.
대형사고때마다 나오는 정부의 재발방지책은 대부분 비슷한 경로를 거쳐 잊혀지고 만다. 대형 사건·사고가 몰고 온 충격을 진정시키는데만 급급하고 진정한 개선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급조된 탓이다. 실제 개선된 것은 별로 없고, 남는 것은 두툼한 「종합대책」서류뿐이다. 이 서류는 관계부처 담당자의 책상속에 고이 간직됐다가 다시 대형사고가 터지면 명칭과 날짜만 바꿔 신속히 대책을 발표하는데 요긴하게 사용된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전대미문의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터지자 총리실 직속으로 「중앙안전점검통제단」이란 그럴듯한 기구를 설치했다. 관계부처를 망라한 이 통제단은 그동안 지하철과 가스시설을 비롯한 전국 3만3천여곳의 위험시설에 대한 긴급안전점검을 실시했다.
지난달 「완료」됐다고 발표된 이 긴급안전점검에 대구 지하철과 가스시설이 포함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번 사고가 터지자 통제단은 『해당지역은 점검대상이 아니었다』고 발뺌했다. 정부도 긴급안전점검이 형식만에 그친 것이었음을 알고 있기에 차마 『점검할 때는 안전했다』고 변명할 수는 없었던 듯하다.
책상에 앉아 과거의 「대책」관계서류를 베껴 「획기적 대책」을 시달하는 중앙부처와, 건성으로 형식적 점검을 하고 보고서는 완벽하게 만들어 올리는 일선행정기관이 발상과 행태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사고 예방은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는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개선의지가 담긴 종합적 안전대책을 새로 마련하고 만사를 제쳐두고 시행해야 한다. 그것이 「세계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이다.<이준희 기자>이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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