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설물 확인않고 「무지막지 굴착」 증명/초속4백m 고압가스 다량유출/파손된 하수관타고 공사장유입『이럴수가…』 가스 누출현장을 확인한 감식반원 공사관계자 수사진 보도진등 20여명은 일순간 혀를 찼다.
현장감식을 시작한지 4시간여만인 29일 상오 10시45분께 대백 공사장과 대구은행 상인동지점 사이 골목길 지하 1.7m에서 천공기의 비트끝이 가스관을 정확하게 내리 찍어 생긴 구멍이 확연히 드러난 것이다. 가스관 주변 흙이 물에 씻겨 내려간 듯한 흔적이 난 것으로 보아 고압가스의 압력으로 하수관으로 밀린 것이 분명했다. 가스 유출지점에서 천공기 비트가 가스관 상단부를 뚫은후 21㎝가량 위로 올라가 있었다. 작업인부가 이상한 느낌을 받아 비트를 다시 빼올린 것이다.
가스 유출현장을 확인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김윤회(43) 일반물리실장은 『초속 4백의 고압 가스가 20여분 이상 새나왔다면 유출량은 엄청날 것』이라며 『지하 매설물을 확인도 않고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뚫어버리다니 어이가 없다』고 탄식했다. 감식반은 비중이 무거운 고압가스가 우수관의 파손된 틈새를 타고 우수관을 따라 지하철공사장까지 흘러들어간 것으로 결론지었다.
29일 상오 6시45분. 사고원인 조사에 나선 검경 합동수사본부 감식반은 날이 새기가 무섭게 대구백화점 상인점 터파기 공사장 현장감식에 들어갔다. 전날밤 사고지역 일대를 통과하는 가스관 압력검사 결과 지하철 공사장 일대는 정상인 반면, 이 지역 가스관의 압력이 0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가스가 샜다는 증거였다.
골목길 위에는 천공 장비 2대가 서있었는데 이 중 1대는 구멍을 파는 비트를 땅속에 박아넣은채 작업이 중단된 상태였다. 아스팔트 위에는 지름 8㎝정도의 구멍 22개가 3열로 뚫려 있었다.
감식반은 대구가스가 제공한 도면을 참고, 가스관 매설지점을 확인했다. 지름 1백㎜짜리 고압관과 1백50㎜짜리 저압관이 지하 2지점에 나란히 묻혀 있었다. 포클레인 2대를 동원, 천공기 위치에서 4지점의 아스팔트를 뜯어내고 파내려가기 시작했다.
상오 9시15분께 땅속에서 붉은색 비닐로 싸인 고압 가스관이 나타났다. 수사진과 감식반이 고개를 끄덕이는동안 포클레인이 흙 한삽을 떠올리자 갑자기 진한 가스냄새가 지독히 풍겼다. 누군가 『담배불을 켜면 절대 안됩니다』고 소리쳤다.
흙속에 남아있는 가스는 생각보다 많았다. 가스관 파손지점 주위는 유출가스의 압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름 80㎝크기의 큰 공동이 지하에 있었다. 가스관 파손부위에서 1백40㎝지점에 있는 하수관에는 직경 15㎝정도의 구멍이 있었다. 이 구멍으로 가스가 유입돼 지하철공사장으로 흘러간 것이 분명했다.<특별취재반>특별취재반>
◎“아르바이트로 학비 마련한다더니…”/불의에 4대독자 잃은 임용술씨/“험한일 못말려 한” 끝없는 오열
『죽어서도 편히 눕지 못하다니…. 모두가 부모 죄인가 봅니다』
대구 가스폭발사고로 4대독자(임동기·23·영남전문대 전자공 1년휴)를 잃은 임용술(72·경남 합천군 가야면)씨는 29일 대구의료원 영안실을 나서며 끝없이 울었다. 이 병원에는 냉동시설이 8개 뿐이어서 임군등 23구의 사체가 간이보관소로 옮겨진 것이다.
임군은 등록금을 마련하기위해 폭발사고가 난 지하철 공사장에서 일하다 참변을 당했다. 임씨는 50줄에 얻은 아들이 그런 험한 일을 하는 것을 알고도 야단쳐 그만두게 하지못한 것이 평생 한이 될것이라고 말했다. 아내(이복순·59)의 도토리묵 행상으로 겨우 생계를 꾸리는 처지여서 재학중 자취방 한칸 얻어주지 못해 월 3만원짜리 독서실에 들게 했던 것도 가슴을 찢는 아픔으로 남았다. 『보고 싶은 책을 실컷 보며 공부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 아들이 자랑한 독서실은 다리도 펼 수 없이 비좁은 곳이었다. 뒤늦게 이를 안 아버지는 부모를 걱정시키지 않으려던 아들의 속 깊은 마음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진다.
임군은 16일 3년간의 해군복무를 마치고 누나가 빚을 얻어 마련해준 8백만원짜리 전세방에 여동생(20)과 같이 입주, 24일부터 지하철공사장에서 막노동을 시작했다. 말리는 아버지를 설득해 겨우 얻은 아르바이트 자리였다.
『이제껏 발 한번 뻗지못하고 살아온 우리 동기가 저세상에서는 편히 쉴 수 있어야 할텐데…』 늙은 아버지는 복받치는 설움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특별취재반>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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