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물 고인 공사장바닥 유품만 “둥둥”/본사취재팀,지하17m 동행수색 “지옥이 따로 없어”/책가방엔 도시락·노트 그대로/터진 수도관선 통곡의 물소리/직경 1m 철제빔 엿가락처럼가스폭발 참사로 1백명 가까운 인명이 희생된 대구 지하철 1―2공구 공사장 지하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고 22시간여가 지난 29일 상오 6시30분 한국일보 취재팀과 함께 공사장 지하를 수색한 대구 서부소방서 119 구조대 전희주(45)소방장은 『15년간 각종 사고현장에서 목격한 참혹한 광경을 모두 모아 놓은 듯하다』며 『지옥이 따로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지상 철제빔에 고정시킨 로프에 의지해 10여 내려간 공사장 지하 1층에는 직경 1 가까운 철제빔들이 엿가락처럼 휘어진채 복공판과 뒤엉켜 있었다. 철제빔에 검은색 학생 가방이 걸려 있었다. 숨진 영남중2년 조인현(14)군의 가방이었다. 옆에는 조군의 것으로 보이는 실내화와 운동화 한짝이 피범벅이 된채 뒹굴고 있었다.
조군의 피묻은 책가방에는 꼼꼼히 필기된 노트와 어머니 노종숙(37)씨가 싸준 도시락이 들어 있었다. 「영남인의 기본생활」이란 책자에는 「최선을 다하자」고 쓴 조군의 좌우명이 선명했다. 구조대원들은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주변을 살피자 곳곳에 영남중 학생들의 주인잃은 책가방과 실내화주머니 교과서등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월배쪽에서 대구시내쪽으로 50여가량 전진하자 폭발순간 공중으로 치솟았다가 떨어진 복공판이 철골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철제빔과 쇠파이프등이 마구 엉켜 비집고 나갈 수가 없었다. 구조대는 무전으로 지상에 연락, 크레인으로 잔해를 제거하고 수색을 계속했다.
대구은행지점앞에는 폭발때 승용차에서 튕겨 나온 타이어 2짝이 놓여 있고, 구겨진 「대구9 1600」번호판이 뒹굴고 있었다. 번호판위에 떨어진 「안전제일」이란 공사장 구호가 적힌 표지판이 눈길을 끌었다.
폭발현장의 중간지점께에 이르자 바닥에 희생자들의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다. 모범택시 운전사의 흰색 모자가 갈갈이 찢긴채 피로 물들어 있었다.
바닥의 파손된 상수관에서는 수돗물이 쏟아져 지하 2층 공사장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물흐르는 소리가 지하공간에서 울려 희생자들의 통곡소리인양 들렸다. 영남중학교 근처에 이르자 학생용으로 보이는 자전거 5대가 완전히 찌그러진채 엉켜 있었다.
폭발구간 끝에는 검은바지에 갈색셔츠 차림의 40대 여인 시체가 복공판 아래에 깔려 있었다. 실종된 김명숙(38)씨로 나중에 확인됐다.
구조대는 다시 사다리를 이용, 7아래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거의 전체가 깊이 1정도 물이 차 있었고, 학생들의 책과 노트를 비롯한 유품들이 물위에 떠 있었다. 지하 2층은 물 때문에 수색이 어려워 지상으로 철수하기로 했다. 참혹한 광경을 더 이상 보기도 어려웠다.
이렇듯 어린 학생들의 「꿈과 미래」를 피와 기름이 뒤범벅된 검은 흙탕물속에 내팽개친 이 사회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상으로 되돌아 올 때까지 구조대와 취재진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특별취재반>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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