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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시나리오/이행원(일요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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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시나리오/이행원(일요시론)

입력
1995.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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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발연구원(KDI)의 이주호 연구위원은 지난3월 대학설립자유화를 제청해 관심을 끌었다. 그는 「교육개혁의 과제와 방향」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일정한 요건만 충족되면 대학을 마음대로 설립하고 정원이나 학과설치도 자유화하도록해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하며 이 부담을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가 아니라 대학이 떠안도록 해야 한다』는 개혁방향을 제시했다.그의 주장에는 물론 일리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더욱 큰관심을 갖게 되는 까닭은 정부의 교육개혁팀의 실세들이 이위원과 똑같은 발상을 하고 있어 곧 발표될 교육개혁방안중 대학교육개혁방향이 그런 식으로 설립문호를 개방하고 정원규모도 대폭 늘리는게 아닌가 해서이다.

문민정부에 들어와서도 대학팽창은 계속돼 왔다. 93년도에 4년제대학입학정원을 1만1천명, 94년도에 2만명이상 증원했다. 대학정원자율화도 예정보다 앞당겨 96학년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키로 했다. 대학정원에 대한 국가통제의 폐지를 선언한 것이다.

정부의 이러한 방침이나 교육개혁팀의 발상은 대학을 시장경제의 논리에 맡겨놓으면 대학간의 자유경쟁으로 우수한 대학은 살아남고, 낙후된 대학은 저절로 도태된다는 것이다. 97년이후 고등교육시장의 개방은 국내대학의 경쟁을 부추겨 이러한 논리를 뒷받침해줄 것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대학입학정원의 철폐와 고등교육시장개방으로 외국대학분교가 많이 생기고 교육여건이 우수한 대학들은 정원을 늘리게 될 것은 확실하다. 인구증가추세로 봐도 대학수요는 더이상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은 예측이 가능하다. 교육소비자(학생)들은 더욱 많아진 선택의 기회를 활용해 싸고 질 높은 대학을 선택하게되고 대학은 학생확보를 위해 수준높은 교육서비스를 더욱 향상시킬 것이다. 교육개혁팀에서 상정하는 「이상적인 시나리오」인 것같다. 그렇다면 꼭 이렇게 되지 않는다는 「나쁜 시나리오」도 생각해 봄직하지 않겠는가. 교육학자 정재걸교수가 상정해 보는 「나쁜시나리오」에 그래서 더욱 큰 관심을 갖게 된다. 그의 가설은 이렇다.

대학교육에 대한 수요가 그렇게 쉽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진학수요는 당해연도 고졸자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지난시험 때만도 수능시험응시생의 35.4%인 27만6천명이 재수생이었다. 취업한 고졸자들도 기회만 주어지면 대학진학을 하고자 하는 잠재수요자들이다.

두번째 가정은 대학들이 담합하여 등록금을 계속인상하지만 교육서비스는 향상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유시장경제의 역사를 보면 상품제조업자들이 적자생존의 경쟁을 하다가 승자만이 남고 패자는 도태하는 경우보다는 서로 담합해서 공생하는 경우가 더욱 많았다. 자유경쟁만 시키면 교육의 질이 좋아지리라는 가정은 우리대학들의 부정적요인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가정은 지금의 대학진학을 위한 학생들의 경쟁이 대학원으로 상승하리라는 것이다. 노동시장과 학력간의 관계를 보면 노동시장의 직업구조가 끊임없이 상위학력으로 이동해왔음을 볼 수 있다. 과거 국졸학력이면 가능했던 직업이 중졸과 고졸학력으로 채워지고 있으며 고졸자면 될 일자리가 대졸자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현실만 봐도 알 수 있다.

50∼60년대의 고졸실업률증가가 대학진학을 부추겼다는 역사적사실은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 대졸실업률의 증가가 대학원진학의 가속화를 예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눈치빠른 대학들이 대학원중심대학을 자칭하면서 대학원증설을 준비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나쁜 시나리오」를 종합해보면 머지않아 우리의 대학취학률은 90%를 자랑하게 될 것이다. 대학등록금은 더욱 많아지고 학부모들의 사교육비부담은 가계비의 대부분을 점하게 될 것이다. 대학원진학열기는 더욱 확대되어 대학진학시험이 지금의 대학입시를 대신하는 북새통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교육에 대한 초과잉투자로 나라경제는 쇠약해지고 일자리가 없어 노는 석·박사학위소지자들이 중대한 사회불안세력으로 등장할지도 모른다. 대학의 입학문호를 활짝 열었을 때 이렇게 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그때가서 후회해봤자 때는 이미 늦어버린다는 것을 교육개혁팀은 유념했으면 한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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