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백80㎏복공판 3층건물 옥상까지 날아 교통정리하던 모범운전사 3명도 참변/적십자사 혈액기증… 공무원등 헌혈나서 마의 금요일 등교·출근길을 덮친 날벼락이었다. 사고현장은 폭격을 받은 것처럼 불기둥이 솟으면서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연옥으로 변했다. 사고소식이 전해지자 대구는 물론 전국민이 매시간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사망자가 더이상 늘어나지 않기를 빌었다.
○…『쾅』하는 굉음과 함께 1백의 불기둥이 솟아오르면서 복공판위를 지나던 대구5자3314호 121번 시내버스등 버스 4대와 승용차 80여대가 공중으로 튀어오르면서 반경 2백일대가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추락한 버스안과 공사장 구덩이 곳곳에는 시체가 뒤엉켜 눈뜨고 볼 수 없었으며 현장주변 도로에는 학생들의 가방과 리복운동화등이 널려져있었다. 특히 유혈이 낭자한채 숨진 어린학생들이 많아 구조대원들조차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인근 지하철공사에서 작업중이던 대건공영직원 민성기(25)씨는 『고막이 얼얼할 정도의 굉음이 울리며 승용차가 지상 10위로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다』며 곧장 현장으로 달려가 생존자 3명을 구하고 시체3구를 건져냈다고 말했다. 폭발지점에 있는 놀부보쌈 건물 3층 옥상 교회 십자가에는 공사장에서 날아간 무게 2백80㎏짜리 복공판(가로 2백70㎝, 세로 70㎝, 높이 20㎝)이 걸쳐져있어 폭발 위력을 실감케했다.
사고직후 현장주변에는 전화와 팩스가 불통돼 생존여부를 묻는 피해자 가족과 인근 주민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이날 사고현장에서는 출근길 교통정리를 하던 달서구 모범택시운전자회소속 택시기사 5명중 박영순(34) 최성호(45) 전진교(39)씨등 3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다리와 허리를 심하게 다쳐 보훈병원에 입원한 윤성대(48)씨는 『사거리 신호등박스앞에서 횡단보도소통을 지휘하던중「쾅」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과 검은 연기가 치솟아 재빨리 대형트럭뒤로 몸을 숨겼으나 흙 모래와 철재빔등 건설자재들이 날아와 덮쳤다』고 말했다.
○…낮 12시20분께 크레인이 공중 10높이에 설치돼 지하 10지점에 처박힌 대구1도2576호 쏘나타승용차와 대구1구1600호 프린스승용차를 견인하자 대구와 구미 경산등 각 지역에서 급파된 119구조대원들이 대형 절단기로 찌그러진 차량 지붕을 절단, 사체인양 작업을 벌였다.
○…사고당시 지하철 목공작업을 위해 지하 18 공사현장으로 인부 90여명과 함께 내려간 우신종합건설 작업반장 천귀일(40)씨는 상오7시45분께 『가스냄새가 난다』며 현장사무소에 무전을 친뒤 현장에서 숨졌다.
○…사고대책본부는 대구시 4개 소방서 소속 조명차량 4대와 크레인 3대, 양수기 6대를 동원, 이날 하오 8시부터 지하에 찬 물을 빼내면서 밤 9시부터 철야로 시체수색과 인양작업을 벌였다.
상인동네거리에는 직경 30㎝의 양수관을 지하에 넣어 물을 빼냈는데 사고현장 지반이 낮아 물이 평균 2정도나 고여있어 수색작업 진전에 따라 사망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사고현장에는 CNN NHK등 세계 각국 통신·언론사 기자들이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다.
○…김무성 내무부차관을 비롯한 내무부 본부직원 1백50여명은 이날 하오 정부종합청사에서 헌혈했다. 내무부는 상오 김차관 주재로 긴급간부회의를 열어 헌혈운동에 참여키로 한뒤 타부처에도 협조를 요청, 정부청사 입주 9개부처 공무원들도 함께 헌혈했다.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부녀봉사단은 부상자들이 입원한 12개병원에 5명씩 배치돼 간호봉사활동에 들어갔고 사고현장에도 40명을 배치, 현장구조요원들에게 식사와 음료수를 제공하고 있다. 또 환자 수혈용 혈액 1천1백60봉지를 병원에 긴급 공급했다. 새마을 부녀봉사대 4백여명도 사고현장과 병원에 배치돼 야식을 공급하고 환자 간호를 맡고 있다.
K―2 장병 4백80명과 대동은행등 기관단체 직원 3백50명도 헌혈에 나섰다. 한편 신민당 대표 김복동씨가 3백만원을 대구시에 기탁했다.<특별취재반>특별취재반>
◎“참사보도않고 야구중계냐”/뉴스속보 소홀에 PC통신 비난 빗발
대구지하철 도시가스폭발 참사 직후 PC통신 하이텔에는 시민들의 분노와 울분의 목소리가 쇄도했다. 특히 하오 1시 30분부터 KBS가 참사보도는 소흘히 한 채 고교야구중계를 하자 이 목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우리나라는 외국의 테러사건에서나 볼 수 있는 참극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누가 굳이 테러를 하겠는가. 우리들은 테러리스트보다 대형참극을 더 두려워 한다』(염석준)
『일본의 NHK는 테러가능성까지 들먹이며 보도에 열을 올렸는데 우리 방송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KBS 보도국의 한 간부는 이러한 비난에 대해 『사고발생 직후 공보처에 낮시간대 뉴스속보 방송허가를 수차례 요청했다. 그러나 공보처가「조금 더 기다려 보라」고 해서 뉴스속보가 지연됐다』고 밝혔다. 때문에 KBS는 처음 고교야구 중계중 자막으로만 속보를 처리하다 하오3시에야 본격적으로 편성, 15분 동안 방송했다.
그러나 공보처의 방송행정 담당자는 『방송사의 방송시간 허가요청은 MBC가 하오3시부터 20분간, KBS가 고교야구준결승전에 이어 하오3시부터 10분간, SBS가 하오5시30분 방송예정이던 저녁뉴스를 앞당기기 위한 10분간이 전부였고 모두 허가했다』고 서로 엇갈린 주장을 했다.<황유석 기자>황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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