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의「오지않네,모든것들」 가수 김현식과 시인 기형도의 죽음이 90년대의 벽두를 때렸다. 석탄처럼 지글지글 타들어가던 그들의 삶은 김남주와도 다르고 박노해와도 다른 삶의 양식을 90년대의 젊은 시인들에게 보여주었다. 정치의 피막을 걷어낸 곳에 아름다움의 속살이 있고, 우리가 믿을 것은 우리의 영혼을 유혹하는 사물의 아름다운 숨결 뿐이라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생명을 고갈시키고 기력을 탕진시키는 아름다움을 그들은 사랑의 진실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김현식과 기형도는 환희와 갈망, 황홀과 절망의 순간에 온몸을 맡기는 신비주의자이면서 간절하게 목을 죄어오는 운명의 순간순간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분석주의자이기도 하였다. 분석과 신비라는 서로 어긋나는 듯한 이 두 명사들이 권대웅 김중식 송찬호 오선홍 이승하 이재우등 90년대 시인들의 특징을 표현하는 어휘가 되지만 분석과 신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분석과 신비를 하나로 맺어 주는 생명력이다. 죽고 싶도록 간절하고 절실한 어떤 것들이 소멸하고 남은 분석이나 신비는 시의 첫째 요소인 긴장을 제거하여 시가 아니라 시적인 것들만을 배치하게 한다.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실린 함성호의 「오지 않네, 모든 것들」은 시와 시적인 것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움직이고 있다. 박학한 건축사답게 함성호는 주제를 분산하여 균형있게 배치하고 감정과 지식을 배경에 눕힐 줄 안다. 함성호의 이 시에는 갖가지 번호의 버스들이 나온다.
버스를 기다리고 보내는 시간은 잊을 수 없는 사건들 또는 이미 잊은 사건들의 연결고리이다. 주인공은 버스를 기다리면서 은밀한 상처들을 헤아리고 기다림의 유혹에 사로잡히고 어쩔 수 없었던 패배들을 기억한다. 은행나무와 버즘나무와 앙상한 가로수가 지켜보는 속에서 끝난 그의 짧은 연애는 이제 수없는 노래와 실연의 시, 기억과 망각, 그리고 새로운 기다림으로 남았다. 시는 「더 이상 부를 노래도 없고/오지 않네 모든 것들」이라는 탄식으로 끝난다. 특별히 시의 눈이라 할 자리를 따로 마련하지 않음으로써 함성호는 꿈처럼 보내버린 혜화동 가는 버스와 「홍등이 켜진 춘천역 앞을 지나는 버스」를 동등하게 취급할 수 있었다. 추구와 좌절의 반복성, 기억과 경험의 동등성에 이 시의 주제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의 마지막 두 행에는 어딘가 주제와 맞지 않아 시의 긴장을 흐트러지게 하는 면이 있는 듯하다.<김인환 문학평론가·고려대교수>김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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