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신한 주제·기법 풍부한 상징 한국영화의 새 가능성 제시 박철수감독의 영화 「301·302」는 제목만큼이나 특이한 영화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음식과 섹스를 연결시켜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성찰하고 있고 두 명의 여주인공과 그들의 가족을 빼면 등장인물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 그러하다. 사람을 토막내어 요리재료로 쓰는 섬뜩한 설정이 또한 그러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닐 사이먼의 브로드웨이 연극 「오드 커플」의 구도에, 「바톤 핑크」와 「델리카트슨」식의 컬트무비적 요소가 혼합된 블랙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는 페미니즘적 요소도 있다. 뉴욕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있는 이서군이 쓴 시나리오답게, 영화 「301·302」에는 참신한 주제와 새로운 기법, 풍부한 상징이 들어 있다.
「새로운 희망」이라는 이름의 아파트 301호에는 요리가 취미인 이혼녀 송이(방은진 분)가, 302호에는 거식증 환자인 작가 윤희(황신혜 분)가 살고 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음식은 섹스와 연결된다.
301호 여자에게 요리의 즐거움은 곧 섹스의 즐거움이다. 그러나 이혼녀인 그녀에게는 자신의 요리를 먹어줄 대상(사랑의 대상)이 없다. 반면 거식증 환자인 302호 여자에게 먹는 고통은 곧 섹스의 고통과 연결된다. 그녀는 먹는 것과 섹스를 똑같이 불결하게 생각한다.
301호 여자는 302호 여자에게 자신의 요리를 먹이려 하고 후자는 그것을 받아 들이지 못한다. 주어야만 되는 여자(301호)와 받지 못하는 여자(302호)는 둘 다 외로운 사람들이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302호 여자가 301호 여자의 요리재료가 되기를 자청함으로써 둘은 하나로 합일한다.
그렇다면 301호와 302호 여자는 결국 각기 다른 두 성향을 가진 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두 여자가 이 영화에서 이름 대신 「삼공일」「삼공이」로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왜 302호 여자의 실종사건을 수사하는 형사가 영원히 그 여자를 찾을 수 없는가 하는 이유이다.
또 두 여자의 방은 각각 모더니즘(302호)과 포스트모더니즘(301호), 또는 귀족문화와 대중문화의 상징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그 두 양극의 관계에 대한 성찰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감독의 세련된 감각과 두 여배우의 뛰어난 연기는 이 영화에 작품성과 재미를 동시에 가져다 주고 있다. 한국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이다.<김성곤 서울대 영문과 교수>김성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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