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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대학살극 배경/내전종식불구 종족반목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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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대학살극 배경/내전종식불구 종족반목 계속

입력
1995.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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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후투족 재기징후 위기감/투치족 현정부,무차별 피의 진압 르완다 키베호 난민촌의 대학살극은 이 나라의 종족간 내전이 지난해 표면상종식됐으나 실제로는 여전히 「진행형」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참혹한 사건이다.

 1백만명에 가까운 목숨을 앗아간 무력에 의해 억지로 봉합된 지난해 내전과 같은 본격적인 종족분규의 가능성이 시한폭탄처럼 도사리고 있어 언제라도 다시 재연될 수 있음을 웅변하는 것이다.

 이번 학살극은 후투족과 투치족의 오랜 반목에서 비롯된 내전의 연장선상에 있다. 르완다인구의 85%는 후투족, 14%는 투치족, 나머지 1%는 트와족이다. 2차대전 이전 르완다를 식민지로 경영한 벨기에는 소수종족인 투치족에게 권력을 쥐어줌으로써 후투족의 반발을 샀다.

 다수임에도 불구하고 소외된 후투족은 벨기에로부터 독립하기 3년 전인 1959년 유혈봉기로 투치족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다. 이후 후투족 지배 아래 크고 작은 충돌을 계속하던 두 종족은 마침내 지난해 전면전에 들어갔다. 유베날 하비야리마나대통령이 탄 귀국 비행기가 피격돼 대통령이 사망한 것이 계기였다.

 지난해 4월6일 시작돼 7월15일 끝난 내전에서 대부분의 희생자는 소수종족인 투치족이었다. 그러나 투치족 군대는 정부군을 격파하고 승리, 집권하는데 성공했다. 세상이 뒤집혀 학살당한 자들이 학살자들을 심판할 수 있게 되자 후투족들은 보복이 두려워 고향에 가지 못하고 난민 신세가 됐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난민촌에 남아있는 후투족은 줄잡아 2백만명으로 추산된다.

 새로 집권한 투치족 정부는 후투족 난민들에게 안전을 약속하며 귀가를 촉구하고 있지만 난민들은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구정부군의 후투족 잔당들이 난민촌에 숨어살면서 재기를 노리고 있는 징후들이 발견되자 새 정부는 18일부터 난민촌 폐쇄에 들어갔다.

 이번 학살극은 난민촌 폐쇄과정에서 벌어진 것이다. 목격자들은 정부군이 두려움에 도망치는 난민들을 향해 미친듯이 총격을 가했다고 전했다. 현지 유엔군들은 수류탄과 박격포도 사용됐다고 말했다. 피를 피로 갚는 광란의 학살이 자행된 것이다.

 르완다 인구는 지난해 내전이 터지기 전 8백만명 정도로 추산됐다. 이 숫자는 내전으로 10% 가까이 줄었을 것으로 보인다. 면적은 경기도와 강원도를 합친 것보다 조금 작은 2만6천3백38㎢이고 91년 기준 세계은행 추산으로는 1인당 연간 소득 평균이 2백70달러밖에 안되는 빈국 중에서도 빈국이다.<오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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