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연주로는 청중과 춤출수 없죠”/10살때 클래식무대 데뷔한/잘나가는 줄리어드 졸업반/봅 딜런등이 섰던 카페에서/모든 장르를 무너뜨린다 뉴욕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에 자리잡고 있는 전통깊은 카페 「화」는 지미 핸드릭스, 봅 딜런 등 전설적인 대중음악 거장들의 숨결이 깃들인 곳이다. 이 곳이 요즘은 정열적인 재즈바이올린 연주로 들썩거리고 있다.
좁은 복도에서, 혹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춤추며 심야의 열기를 발산하던 젊은이들의 시선이 조명 한가운데로 나선 연주자에게 집중됐다. 그가 잠시 호흡을 끊었다 내뿜으며 온몸으로 연주를 시작하자 손에 들린 바이올린에서 쏟아져 나오는 숨가쁜 리듬이 카페를 휘감았다.
고요한 달밤을 수놓는 부드러운 선율이 제격인 바이올린이 그의 손에서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하는 괴물로 변모했다. 재즈라고 하지만 여기에 흥겨운 컨트리 음악과 찢어지는 로큰롤이 보태지고 펑크에 테크노음악, 게다가 클래식 기법까지 가미된 그의 연주는 모든 장르에서 「젊음」만을 추출해낸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밤새 몸부림을 쳐도 지칠것 같지 않아 보이던 젊은이들도 신들린 무당이 살풀이를 하는듯 하는 그의 연주를 따라 가기엔 힘이 부친듯 기진맥진해 보였다.
이방인들은 엉덩이에 간신히 걸쳐진 헐렁한 바지에 멋대로 헝클어진 긴머리, 더부룩한 턱수염에다 한쪽 귀에 귀고리까지 전형적인 히피족 모습을 한 이 재즈바이올리니스트가 뜻밖에 명문 줄리아드 음대생, 그것도 젊은 한국인이라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졸업반인 유진 박(20)군은 줄리아드의 도로시 딜레이, 강효, 유진 베커 등 세계적인 스승들로부터 전수받은 자양분을 바탕으로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접목을 꾀하는 의욕넘치는 젊은 음악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뉴욕대 의대교수인 부친 박성유씨와 모친 이장주씨의 외아들로 75년 뉴욕서 태어난 유진 박은 4살때 바이올린을 손에 잡았다. 8살때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들어갔고 10살때인 85년에 웨인 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 처음 대중앞에 섰다. 88년에는 링컨센터에서 「리틀오케스트라 소사이어티」와 협연하면서 주 목을 받았고 크고 작은 경연대회에서 입상,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가 대중음악과 만난 것은 줄리아드 입학 직전인 3년전. 병원에 위문연주를 갔다가 즉석에서 로큰롤 피아노 연주자와 협연한 것이 처음이었다. 그 때 그는 환자들이 열광하는 것을 보았다. 『클래식만으로는 느끼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없는 한계에 부닥쳐 음악으로부터 단절감을 느끼던』 그에게 서광이 비친 것이다. 부모를 졸라 전자바이올린을 산뒤 본격적으로 재즈바이올린을 연습했다.
우연히 들렀던 카페 「화」에서 즉석연주실력을 인정받아 정례연주를 하게 됐고 음악축제로 유명한 아스펜에서 연주회를 갖는 등 차츰 활동영역이 넓어지자 공연기획사 「스티븐 스코트」의 제의로 전속계약을 맺었다. 이후 라디오시티 뮤직홀공연, 슈퍼볼 전야축제참가, 아스펜 재즈앙상블 협연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차세대 음악을 이끌어갈 총아로서 자리를 다져가고 있다.
유진 박은 무엇보다 「느낌」을 중요시한다. 아무런 구속없이 느낀대로 연주하고 발산하고 싶어한다. 『클래식음악을 연주하면서는 관객과 같이 춤출 수가 없다』고 말하는 그는 관객과도 그 느낌을 공유하고 싶어한다.
『먼저 음악을, 다음엔 예술을, 마지막으로 모든 세상을 하나로 만들겠다』는 것이 이제 겨우 스물고개에 올라선 청년음악가가 겁없이 외치는 포부다.<뉴욕=김준형 특파원>뉴욕=김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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