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특파원 오클라호를 가다/발길끊긴 도심 잔해만 뒹굴어/시민 의연… 생환염원 리본달기【오클라호마시티=정진석 특파원】 폭탄테러가 할퀴고 지나간 오클라호마시티는 침묵의 도시로 변해있다. 밤낮을 가리지않고 귓전을 때리던 긴급 구호차량의 사이렌소리도 사건발생 이틀째인 20일에는 완전히 끊어지고 실종된 아들의 사진을 구조대원들에게 내보이며 울부짖던 어머니들의 절규도 폭풍뒤의 고요속에 묻혀버렸다.
사건 현장인 알프레드 머레이 연방건물주변에도 수백명의 보도진만 북적댈뿐 일반인들의 발길은 크게 줄어들었다. 전율과 비탄을 안으로 삼키며 「얼굴없는 테러」에 침묵으로 항거하는 것일까. 활기에 넘치던 오클라호마시티는 정적속에 빠져있다.
하오 1시 30분 평소같으면 부산한 모습이었을 다운타운은 적막한 폐허의 중심가처럼 을씨년스럽다. 사건이 난 알프레드 머레이연방건물에서 동쪽으로 2백여 떨어진 곳에 있는 5층짜리 인쇄소건물의 유리창은 완전히 박살나 유리조각들이 인도를 뒤덮고 있으며 유리창틀을 임시로 널빤지로 막은 고층건물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사방 1이내는 대부분의 건물들이 비슷한 상황이다.
가족들의 생사확인 장소로 이용되는 인근의 퍼스트 크리스천교회에는 이날도 1백여명 이상이 밤을 지새웠다. 6개월된 딸아이의 사마귀 자리와 흉터 위치를 구조대원들에게 설명해주는 한 여인의 지친 목소리가 가족의 무사생환을 비는 기도소리와 묘하게 뒤엉켜 가슴을 때렸다. 인근의 어린이 병원과 침례교회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지만 내부는 조용한 흐느낌만 가득했다.
오클라호마시티 시민들은 이날부터 가슴에 하늘색 리본을 달기 시작했다. 무너진 건물 잔해속에 생존해 있을지 모를 가족과 친척, 또는 이웃의 생환을 기원하는 염원이 담긴 리본이다. 교회를 중심으로 시작된 리본달기는 불특정다수에 대한 테러와 폭력에 굴하지않는 강인한 정신력을 과시하는듯 하다.
중심가의 한 건물벽에 내걸린 현수막은 오클라호마시티 시민들의 마음을 단적으로 대변해주고 있다. 『고맙습니다. 하느님. 우리의 구조팀들과 관계당국 직원들은 생명과 우리의 도시를 지키느라 헌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하느님 아래서 오클라호마가 자랑스럽습니다』
주민들의 주문도 의연하게 테러에 맞서는 자신들의 모습을 가감없이 전해달라는 것이다. 보도진들이 몰려있는 사건건물 북서쪽 공터에는 오클라호마전체의 희생으로 모든 게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전화국에서는 간이 전화대를 설치해 보도진들의 편의를 보살펴주고 있고 구세군측에서는 간이 식품대를 설치, 무료로 식사를 제공했다.
그러나 폭파된 건물에 대한 수색작업은 아주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미연방수사국 (FBI)과 연방 주류·연초·총포류단속국(ATF)이 주축이 된 수사및 구조팀은 인원이 2배로 늘어났지만 진전은 별로 없다. 수색팀은 고가사다리와 기중기, 수색견까지 동원하고 있지만 아직도 건물일부에 붕괴 위험이 남아있고 혹 있을지도 모를 폭발물때문에 조심스럽게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다.
당국은 증거인멸과 안전등을 이유로 사고현장에서 4블록 3백여이내에는 민간인의 출입을 완전 통제했다.
한 택시운전사는 『우리집 뒷마당도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폭력과 테러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미국사회의 현실을 인정했다. 이들에게 미국은 더이상 자유와 평화가 넘치는「꿈의 땅」이 아닐 수도 있다. 자유와 평화를 피땀으로 지켜온 미국이 오히려 테러와 폭력의 위협에 전전긍긍해야하는 현실은 너무 역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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