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통죄,아내만-부부모두-폐지론 발전/「단설의 키스」유죄… 26년뒤엔 무죄/여권신장 반영… 90년「이혼시 재산분할」괄목/55년 박인수사건 선고 놀라운 성풍속 변화 「그 때를 아십니까」―. 법원 1백년사의 갈피마다에는 컬러 TV에 비치는 흑백사진처럼 어색하면서도 어딘지 낯 익은 사건들이 기록돼 있다. 이 사건들에서 우리는 흘러간 시절의 세태와 시대상, 우리의 자화상을 다시 읽을 수 있다. 요즘 여성들이 들으면 펄쩍 뛰겠지만, 여성이 소송을 내려면 남편의 허가를 받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때 제정된 구민법은 「처의 능력제한」 규정에 그렇게 돼 있었다. 47년 9월 대법원은 『국시인 민주주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며 이 규정을 위헌으로 선언했다. 당시 대법원은 『여성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인정하고 관공리임명자격도 남녀구별이 없는 터에 남녀평등을 부인하는 구제도는 우리 사회에 적합하지 아니하다』고 천명, 만천하 여성들의 박수를 받았다.
여권의 괄목할 신장은 90년 개정민법에 「이혼시 재산분할권」을 규정하기에 이르렀다.이혼하는 아내는 부부가 공동으로 모은 재산은 명의에 관계없이 나눠줄 것을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이 재산분할에서 전업주부의 「내조」몫을 최고 50%까지 인정하는 것이 법원의 추세다.여성이 소송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시절에 비라면 실로 격세지감이 있다.
선뜻 믿어지지 않겠지만,간통죄가 아내에개만 적용되던 시절도 있었다.「남편의 간통은 혼인의 평화를 해치지 않고도 가능하지만,여성의 간통은 가정파탄은 물론 자손의 혈통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는 논리가 당시에는 지당한 것이었다.
부부의 간통을 모두 처벌하게 된 것은 53년 10월 신형법이 시행되면서부터다.그리고 30여년이 더 흐른 80년대말부터 간통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란이 치열하게 된 것은 시대상과 의식의 변화가 얼마나 큰 가를 실감케 한다.
헌법재판소는 90년 간통죄 위헌론에 대해 「선량한 성도덕과 일부일처제,부부간의 성적 성실의무 수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합헌 경정했다.그러나 92년 법무부는 형법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간통죄폐지를 추진하다 여론에 밀려 우퇴했다.「인습의 벽」은 그만큼 견고한 것이지만,법무부의 시도는 그벽도 허물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성풍속과 여성의 정조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판결속에 녹아 있다.55년 댄스홀을 무대로 명문여대생등 수십명의 미혼여성을 농락,혼인빙자간음혐의로 기소된 「한국판돈후안」 박인수사건에서 서울지법 권순영판사는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한다.는 며언과 함께 무죄를 선고,세상을 놀라게 했다.이 판결은 몇달 뒤 항소심에서 파기됐으나,형량은 고작 징역 1년이섰다.당시의 사회규범으로는 용납하기 어려운 피해여성들의 무분별한 처신을 법원은 간접적으로 꾸짖은 셈이다.<이희효 기자>이희효>
◎법복 변천사/해방직후 일제유물벗고 평상복 재판/53년 무궁화무늬법복·법모 최초도입/66년 미식가운형으로 변경·법모 폐지
우리 법원의 재판정에서 법관과 검사들이 법복을 입기 시작한 것은 1920년 일제의 법복이 도입되면서 부터다. 그전에는 법관도 일반관리들과 마찬가지로 검정색 도포와 사모에 허리띠를 둘렀다. 한일합방후 8년간은 법관들이 일제 무단통치의 상징인 칼을 차기도 했다.
일제의 법복은 가슴부분에는 일왕이 친히 임명했다는 표시인 오동나무잎 무늬, 법모에는 구름무늬가 새겨졌다. 해방과 함께 법관들은 일제 법복을 벗어 던지고 평상복차림으로 재판을 진행했다. 대개 한복 두루마기나 양복을 입었으나, 점퍼차림으로 법대에 오르는 법관도 있었다.
독립국가의 사법권을 상징하는 법복이 마련된 것은 53년 3월 대법원에서 「판사 검사 변호사및 법원서기 복제규칙」을 제정하면서다. 법복의 가슴에는 직경 20의 무궁화무늬속에 입체 무궁화를, 법모에는 직경 5의 무궁화무늬속에 태극무늬를 새겨 넣었다. 장식의 색깔은 판사가 흰색, 검사는 황색, 변호사는 자색이었다. 이 최초의 법복은 상당히 화려하고 장중하기까지 했다.
그뒤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인 법복을 간소화하자는 의견이 대두하던중 66년 조진만 대법원장은 선진각국의 법복을 검토하도록 지시, 결국 미국식 법복을 본 떠 대학 학위수여식에서 입는 가운형태의 새 법복이 탄생했다. 가슴의 무궁화무늬를 없애고 검은색 바탕에 흰 줄무늬 넥타이를 매도록 해 산듯한 느낌을 주도록 했다. 이때 법모를 폐지했다.
머리 뒤쪽에서 끈을 묶도록 된 법모는 쓰기가 불편한데다 재판도중 법관이 깜빡 졸다가 법모를 떨어뜨려 체모를 손상하는 일도 흔히 있어 법관들의 불평이 많았다.
86년에는 다소 「촌스런」 넥타이 색상을 자유화했다. 그러나 「멋쟁이 법관」들의 튀는 패션감각탓에 법정 분위기가 산만해졌다는 지적이 나오자 92년 다시 짙은 자주색으로 통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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