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년간 주인7번이나 바뀌며 부심거듭/“일어설만하니까 또…” 다시 미아신세 대성목재의 기착점은 어디인가. 대성목재는 모기업인 유원건설의 부도로 법정관리를 신청, 법원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졸지에 「재계의 미아」가 돼버린 것이다.
창업이후 주인을 7번이나 바꿔야 했던 비운의 대성목재는 환갑이 다된 나이(59년)에 또 주인이 바뀌게 됐다. 대성목재의 경영권이 창업자인 일본인 기무라(목촌)씨에서 광복후 적산관리자인 정부당국 천우사 조흥은행(은행관리) 신동아그룹 효성그룹 유원건설로 넘어온 상태에서 유원건설의 부도로 공중에 떠버린 것이다.
한때 우리나라의 합판산업을 주도하며 대학졸업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대성목재의 「기업유전」은 기구하다. 최영진대성목재 부사장의 말마따나 「기착점없는 고난의 항해」가 언제 끝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성목재는 우리나라 기업사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대성목재는 일제치하인 36년 일본인 기무라씨에 의해 인천 만석동에서 조선목재라는 상호로 출발했다. 광복후 기무라씨는 일본으로 쫓겨 갔고 대성목재는 정부가 주인역할을 했다. 민간인 손에 넘어온 것은 54년. 당시 최대의 무역업체였던 천우사의 전택부씨가 인수, 합판경기의 활황세를 타고 우리나라의 정상급 기업으로 부상했다. 합판은 60년대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산업으로 달러박스였다. 좋은 시절도 한때, 합판경기가 시들면서 대성목재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만년적자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붙여진채 천덕꾸러기로 변하고 말았다. 정부는 69년 적자의 늪에 빠져 있던 대성목재를 부실기업정리대상으로 지정, 경영권이 주거래은행인 조흥은행으로 넘어갔다. 신동아그룹을 주축으로 원풍산업 국제약품이 은행으로부터 대성목재의 경영권을 73년에 인수했지만 경영을 정상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후 신동아는 대성목재를 효성으로 넘겼고 효성은 다시 유원에 떠넘겼다. 유원건설이 대성목재를 인수할 때 조흥은행은 은행부채(8백억원)의 원리금상환을 10년동안 유예시켜주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대성목재는 86년 유원건설에 인수된 후 연간 90억원에 달하는 금융비용절감에 힘입어 경영이 정상화되었다. 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이익을 냈고 매출액(94년 1천3백74억원)도 크게 늘고 있다. 최근에는 중밀도섬유판과 침엽수합판설비를 갖추며 경쟁력제고에 힘써왔으나 모기업인 유원건설의 부도 여파로 다시 험로를 걷게 된 것이다. 재계관계자들은 『이제 좀 일어설만 하니까…』라는 동정심을 나타내며 『기업은 역시 주인을 잘 만나야 한다』는 격언을 되씹고 있다. 대성목재가 8번째 주인을 맞아 말그대로 칠전팔기의 신화를 창조할지 아니면 그냥 주저앉고 말지 관심거리다.<이백만 기자>이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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