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저팬 채희동과장/시장점유율 3∼4%… “16년만의 쾌거”/도일초기 낮엔 일 밤엔 일어학원 다녀/가족아플땐 병원가기전 사전부터 찾아 진로그룹의 일본 현지회사 진로저팬의 채희동(36)과장은 지난달 31일로 일본생활 만 3년을 맞았다.
그동안 여러차례의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가 놀랄만큼 반일본사람이 되었지만 아직도 일본생활은 낯선 것이 많다. 채과장이 일본근무 명령을 받은 것은 지난 91년말. 대학졸업후 86년 3월 진로그룹에 입사한 그는 기획조정실 해외프로젝트팀에서 주로 일했고 도일직전에는 그룹이 야심을 기울이고 있던 카스맥주의 기획멤버로 활동했다.
발령전부터 회사에서 매일 아침 근무시간전에 실시하는 외국어 강좌코스를 밟고 있던 그는 기본적인 일본어를 대강 배우고 92년 3월 31일, 단신으로 도쿄(동경)에 발을 디뎠다. 부인 유지희(35)씨와 아들 문기(7), 딸 현정(5)등 가족을 떼놓고 온 것은 우선 살 집을 구해야 하는데다 몸으로 부닥치며 현지에 적응해야 할 일이 많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집을 얻고 가족들을 불러 오기까지 2개월여동안 채과장은 롯퐁기(륙본목)에 있는 회사에서 영업일을 익히고 일과후에는 일본어학원에 나가 말을 배우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또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이곳저곳 전철을 타고 돌아다니며 지리를 익혔다.
이사철인 3∼4월을 지나자 집얻기도 수월해져 지바(천엽)현에 인접한 에도가와(강호천)구 니시카사이(서갈서)의 맨션단지에 방 3개와 거실이 딸린 전용면적 19평규모의 집을 월 19만엔에 얻을 수가 있었다.
굳이 신주쿠(신숙)같은 시내 중심부에 10만엔이상의 월세를 더 부담하면서 집을 얻을 필요없이, 변두리로 나가 공원도 가깝고 조용한 동네를 택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니시카사이는 동네분위기가 한국의 아파트촌을 연상시키는데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도쿄 디즈니랜드와 널찍한 린카이(림해)공원이 인근에 있어 아이들을 키우기에는 제격이었다.
가족들과 합류하고 나서 제일 먼저 느낀 곤란은 당시 만4살이었던 문기가 말이 통하지 않는 스트레스때문에 유치원가기를 싫어하는 것이었다. 심하면 6개월정도에서 1년까지도 지속되는 이같은 스트레스는 문기의 경우 이내 해소돼 1달정도 지나면서부터는 제가 먼저 가겠다고 야단이었다. 그 아들이 이제는 유치원을 졸업하고 소학교에 입학했다. 딸 현정이도 아무런 문제없이 유치원에 잘 다니고 있다.
어린 나이여서 일본말이 반쯤은 모국어가 돼버린 아이들이 걱정돼 집에서는 꼭 한국말을 쓰고 매일 한글공부를 시키고 있다.
처음 아이들이 아플때 병원에 가기전에 「열난다. 땀난다. 기침을 한다」는 등의 증상을 일일이 사전을 뒤져가며 적어서 갖고 가야했던 부인 유씨도 이제는 일본생활에 별다른 불편이 없을만큼 말을 익혔다. 물론 당시에도 병원에서는 의사들이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고 그래도 못 알아들으면 한자로 필요한 사항을 써주는등 한국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친절을 맛보기도 했다.
이사직후 아이들이 한국식으로 집에서 뛰어 노는데 대해 아랫집에서 두번이나 올라와 대단히 쌀쌀맞게 『계속 이러면 주인에게 얘기해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고 위협해 불안했던 일도 있었다. 아이들 버릇을 하루아침에 고칠 수도 없는 일이어서 간을 졸였으나 그 집에 한국며느리가 들어오는 우연한 「사건」으로 지금은 오히려 절친한 사이가 됐다.
부인이 한달정도 자전거를 배우는 동안 이곳저곳에 상처를 입고 차를 긁어 곤란했던 일도 하나의 추억거리가 됐다. 채과장은 일본생활에 필수품인 자전거를 두대 갖고 있고 쉬는 날이면 부부가 한 아이씩 태우고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을 가는 것도 습관이 돼 있다. 쇼핑이나 가까운 곳으로의 나들이에도 자전거는 그만이다.
회사는 지난해 진로소주만 1백17만상자(한상자는 12병)를 팔 정도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진출 16년만에 전체 소주시장의 3∼4%를 점하는 성과에 대해 현장영업을 책임지고 있는 채과장은 모두 「선임자들의 고생」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채과장의 주업무는 대리점과의 거래관리와 판촉. 주류판매면허를 얻을 수 없는 진로저팬은 고쿠부(국분)등 2개 주류유통회사와 대리점계약을 맺고 있다.
유통업체들은 판촉에 신경을 쓰지않아 채과장팀이 직접 업소들을 찾아다니며 판촉활동을 해야하기 때문에 심심찮게 야간근무를 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상오 7시 30분께 집에서 나와 거의 저녁을 밖에서 먹게 된다. 또 홋카이도(북해도) 규슈(구주)등지로의 당일치기나 1박 2일 출장도 잦아 늘 가족들에게 미안함을 갖고 있고 그래서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되도록 지방으로 가족여행을 떠나는등으로 보상하고 있다.
◎채희동씨의 일본생활/기본급외 주택·주재수당 월84만엔/생활비로 50만엔 쓰고 나머지 저축/공과금·식료품 한국보다 훨씬비싸
채과장은 현재 본사의 기본급을 받는 외에 매달 월세에 해당하는 주택수당 19만엔과 주재수당 65만엔을 받고 있다. 2백%의 현지상여금도 받고 있다. 일본에 나와 있는 한국 주재원들 전체보수수준의 평균을 약간 웃도는 이같은 지원에 대해 그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생활비는 월 50만엔 정도를 쓰고 나머지는 저축하는데 외국생활에서 겪는 이런저런 불편과 가족들의 희생을 감안하면 적절한 보상이라고 채과장은 생각한다. 구에서 절반정도를 환불해주지만 1명에 월4만엔가량씩 들어가는 교육비와 한국에 비해 눈에 띄게 비싼 공과금, 한국보다 4배 가까운 식료품비등이 주된 지출이다.
채씨는 3년간 거주한 일본의 인상에 대해 『공원등 휴식공간이 잘 돼 있고 병원등 복지시설도 충분한 것이 가장 부럽다』면서 『친절하고 질서를 잘 지키며 되도록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국민성등 아직도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고 밝혔다.
규격화와 몰개성, 집단주의등의 부정적인 면도 발견되지만 그보다는 좋은 점들이 많다는 것이다. 또 인기연예인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검소하고 청결한 것도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그런 반면에 복잡한 전철안이나 우연히 길에서 만나는 외국인에게는 비할 바 없는 친절을 베푸는 일본인들이 정작 일을 갖고 만나는 외국인들에게는 의외로 냉정한 것을 피부로 느끼며 자신이 역시 이방인임을 확인하게 된다는 채씨의 얘기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