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형장학회」설립 이계단씨/외아들 잃은 슬픔 달래려 장학사업/연금·행상으로 기금… 첫지급 결실 「4·19할머니」가 외로운 병상에서 35주년 4·19를 맞았다. 외아들이 묻혀있는 4·19묘지가 국립묘지로 승격됐다는 소식이 너무 반가워 당장이라도 병상을 박차고 일어나 달려가고 싶다. 그래야 아들 이름을 딴 장학재단의 기금을 늘리려는 꿈을 이루게 된다. 4·19 할머니로 불리는 이계단(85·충남 청양군 청양읍 읍내리)씨는 30여년 동안 모진 고생 끝에 모은 4천여만원과 자신의 집(4천5백만원상당)으로 「근형장학회」를 설립, 13일 처음으로 청양군내 19개 초·중·고교생 70명에게 장학금 2백70만원을 지급했다.
1년전 유방암 수술을 받은 할머니는 병든 몸을 돌보지 않고 장학기금 늘리기에 힘쓰다 병이 도져 8일 서울 보훈병원에 입원했으나 병세는 호전되지 않고있다.
결혼 80일만에 남편을 잃은 할머니는 어렵게 키운 유복자(이근형 당시 24)마저 4·19 혁명때 잃었다. 군대를 막 제대한 아들과 함께 살길을 찾아 서울로 올라온 60년4월, 장안은 3·15부정선거 규탄시위로 뒤덮였다. 남달리 정의감이 강했던 아들은 4월16일 경무대 앞에서 시위중 동대문경찰서에 연행돼 6일만에 싸늘한 시체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쥐꼬리만한 보훈연금을 한푼도 쓰지 않고 저축했다. 아들의 죽음과 바꾼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었다. 행상도 하고 종이봉투도 접어 팔아 생계를 꾸리면서 갈수록 간절해지는 아들생각을 장학사업으로 달래기로 결심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어하던 아들을 중학교 밖에 못보낸 것이 한스러웠던 것이다.
연금을 저축하고 생활비를 아껴 모은 1천만원의 이자로 84년부터 청양군내 불우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 시작했다. 끼니를 걸러가며 냉방에서 겨울을 나는 지독한 근검절약으로 10년간 저축한 돈이 4천만원을 넘어선 지난해 가을 할머니는 정식으로 장학회를 설립했다. 자신이 죽으면 집을 팔아 기금을 늘리기로 하고 공증까지 끝냈다.
할머니는 지난 30여년동안 매년 4월19일 아들의 묘소를 찾았다. 묘비 앞에서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하면서 울고나면 가슴이 후련했다. 그러나 4·19가 다시 태어난 뜻깊은 날 묘지를 찾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쉽다. 4·19가 의거에서 혁명으로 격상됐다는 말에 『그럼, 우리아들은 참 장한 일을 했지』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할머니의 눈가에 물기가 번졌다.<박진용 기자>박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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