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당 증빙이 적확지 아닌지라 무죄 방송사라”/재판과정·구체혐의 명시않고 판결이유만 기록 「충청도 청풍읍내 중리동거 복역 하리 피고 김용렴(년39), 동읍 읍내 중리동거 농업평민 피고 황거복(년39)이가 동학당에 투입하야 지방안녕을 해하는가 치의하야 본부재판소에 나교하야 심문을 여행한즉 피고의 범죄한 증빙이 적확지 아닌지라 무죄방송사라. 개국 5백4년 4월 초10일 법부고등재판소 선고 법부참의 장박」
1895년 4월25일(음력 4월1일) 「재판소구성법」시행으로 근대적 법원이 설치된지 9일만인 5월4일(음력 4월10일) 나온 근대 사법사상 첫 판결문 원본이 발굴돼 17일 공개됐다.
대법원은 「근대사법 1백주년」을 맞아 우리 사법의 뿌리찾기를 위해 구한말 판결문들을 검토한 결과 부산 정부기록보존소에 보관된 「법부고등재판소 제42호 판결선고서 원본」이 근대사법 제1호 판결문임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 판결문은 1894년말 설치된 「법무아문재판소」의 판결문 양식을 그대로 쓰면서 판결문 번호도 「제 42호」로 돼 있고, 법무아문을 개편한 「법부」와 「고등재판소」등을 인쇄된 글자위에 덧붙여 쓰고 있다. 대법원은 정부기구 개편과 「재판소구성법」시행에 따른 준비가 덜 된 때문으로 추정, 이 판결이 법부 재판소 설치후 첫 판결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을 맡은 법부 참의 장박은 「재판소구성법」에 따라 서광범(고등재판소재판장) 임대준(한성재판소판사) 조신희(특별법원판사) 이재정(특별법원판사)등과 함께 최초로 임명된 5명의 판사중 한명이다.
판결문의 내용은 「동학당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된 하급관리 김용렴과 농민 황거복이 지방안녕을 해친 혐의가 있어 재판에 회부, 심리한 결과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치 않아 무죄를 선고, 석방한다」는 것이다.
판결문은 오늘날 형사사건은 「피고인」, 민사사건은 「피고」로 부르는 것과 달리 범죄혐의자를 「피고」로 지칭하고 구체적 혐의사실이나 재판과정, 증거등을 명시하지 않고 판결주문과 간단한 판결이유만 기록하고 있다.
이 판결을 한 법부고등재판소는 재판소구성법에 의하면 상소심을 심리하게 돼 있는데도 이 사건의 1심겸 최종심 판결을 한 사실이 「무죄를 선고, 석방한다」는 판결문에 나타나 있다.' 이는 동학전쟁의 혼란과 급박한 시대상황때문에 재판을 서두른 것으로 보인다.<현상엽 기자>현상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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