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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월」과 「적대」(장명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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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월」과 「적대」(장명수칼럼)

입력
1995.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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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를 강도높게 비판한 삼성 이건희회장의 베이징(북경)발언이 장안의 화제다.『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란 그의 말을 흉내내어 『쌍용의 김석원회장은 왜 2류에서 4류로 갔지?』라고 비꼬는 사람도 있고, 『마누라와 나는 요즘 밀월관계가 아니라 가장 앤티(ANTI)한 관계입니다』라고 웃기는 사람도 있다. 재벌총수가 정부의 경제정책이나 기업활동 규제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기업들이 이 눈치 저 눈치 안보고 기업정책에 대해 활발하게 의견을 내놓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회장의 발언내용과 말하는 방식은 정부뿐 아니라 국민을 불쾌하게 한다. 그의 발언에서는 「3류」 「4류」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자만심에 가득찬 「2류」냄새가 난다.

 『삼성자동차를 허가한 것은 삼성과의 밀월관계때문이 아니라 부산시민의 압력때문이었다. 또 자동차사업을 허가하면서 인력을 데려올 수 없도록 규제한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에 위배된다』라는 그의 말은 어이가 없다. 삼성이 자동차산업을 허가받으려고 총력을 기울이며 부산시민을 앞장세워 로비를 벌인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인데, 이제와서 『정부가 자동차사업을 허가한 것은 부산시민때문』이라고 밀어버려도 될까. 다른 자동차업체의 타격을 우려하는 여론에 눌려 기술자 스카우트 제한각서에 서명하고 나서 『직업자유를 보장한 헌법에 위배된다』고 비난하는 것은 세상을 너무 우습게 보는게 아닐까.

 김영삼대통령이 부임하자마자『나는 기업으로부터 단 한푼의 정치자금도 받지 않겠다』고 말했을때 우리는 그것을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와 기업의 관계를 법과 규칙이 지배하는 관계로 정립해가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관계에서는 법을 초월한 밀월관계나 적대관계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협조적이라고 특혜를 베풀지도 않고, 괘씸하다고 세무조사를 하지도 않는 공정한 관계가 정립되려면 정부도 기업도 선언 이상의 의식전환을 해야 한다.

 기대했던대로 일이 안된다고 정부를 비난하는 재벌, 재벌이 감히 정부를 비난하다니 그 괘씸죄를 어떻게 다스리나 궁리하는 정부의 자세가 바뀌어야 한다. 이회장은 『새정부들어 규제를 완화했다고 하지만,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는데, 재벌과 정부의 서로에 대한 기대도 달라지지 않은 것같다. 국민은 정부와 재벌이 밀월관계가 되는 것도, 「앤티한 관계」가 되는 것도 원치 않으며, 법이 지배하는 공정한 관계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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