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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문확산 이삼성회장 북경발언 진의는…/기업활동 제약에 불만 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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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문확산 이삼성회장 북경발언 진의는…/기업활동 제약에 불만 분출

입력
1995.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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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매입·인력확보등 최대 역점 프로젝트 시작부터 차질/추가특혜 겨냥·「각서」불이행 명분축적용 해석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의 베이징(북경)발언은 과연 무엇을 겨냥하고 나온 것인가. 이회장이 정부를 강도높게 비판한 계기와 속셈이 궁금하다.

 재계는 이와 관련, 이회장은 2세총수로서 회심의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승용차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고 있는데 따른 불만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삼성은 승용차공장건설과 관련하여 ▲지나치게 높은 공단분양가(토지 미확보) ▲기술인력확보 미흡 ▲공장건설에 따른 환경규제등으로 많은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삼성은 98년부터 승용차를 생산, 수출까지 하겠다고 밝힌 대정부약속(각서)을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회장 발언을 뜯어보면 승용차사업이 대정부비판의 뼈대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토지확보문제다. 삼성으로서는 부산시민이 승용차공장을 필사적으로 유치한만큼 공장부지를 비교적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다. 이회장은 『부산시가 시작부터 삼성을 상대로 땅장사를 하려고 한다』며 부산시가 삼성을 봉취급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회장은 또 『독일에서는 공장 하나 지으려 하니까 땅을 무상으로 주더라』고 말했다.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다는 지적이다. 신호공단분양가를 놓고 부산시(평당 90만원)와 삼성(평당 50만원)은 큰 의견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술인력확보문제는 더 심각하다. 이회장은 지난해 승용차사업에 진출하는 조건으로 기존업체의 현직기술자는 물론이고 퇴직후 2년이 지나지 않은 기술자는 스카우트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정부에 제출했었다. 이회장은 이와 관련, 『승용차사업진출을 허가하면서 인력을 데려올 수 없도록 규제한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을 위배한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는 이회장이 각서를 타의에 의해 썼고 이런 각서를 강요한 정부는 위헌적 행위를 했다는 의미가 실려있다.

 행정규제문제도 이회장이 승용차사업을 시작하면서 직접 체험한 내용일 것이다. 이회장은 『공장을 세우려면 도장을 1천여개 받아야 한다』 『이 정부 들어서고 나서 규제를 많이 완화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완화된 것은 하나도 없다』 『자동차투자는 삼성이 한국에서 하는 마지막 투자가 될 것 같다』는등의 발언을 했다. 문민정부가 출범직후부터 신경제정책 정부조직개편등을 통해 최고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행정규제완화정책을 여지없이 깔아뭉개 버린 것이다. 대통령과 각료들이 입에 바른 듯이 강조해온 투자유치니, 원스톱서비스(행정절차일괄처리)니 하는 행정개혁정책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업을 하고 있는 재벌총수에 의해 빈말로 격하되고 만 것이다.

 승용차사업과 관련한 이회장의 이같은 강도높은 정부비판은 추가적인 지원이나 특혜를 끌어내기 위한 사전포석이자 「승용차 각서」불이행시의 해명을 위한 명분축적용으로 해석되고 있다.

 삼성의 승용차사업은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대형 프로젝트다. 이회장 개인에 있어서도 승용차사업은 회장취임후 자신이 추진한 첫번째 사업이다. 승용차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되지 않았을 때의 위험부담은 그룹으로 보나, 이회장 개인으로 보나 엄청나다. 승용차사업은 이회장의 경영수완을 평가하는 시험대다.<이백만 기자>

◎청와대·정치권 표정/“있을수 없는 일… 원칙대로 대응”/「하류」매도에 당혹/“정경유착 반성을”

 청와대는 15일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의 베이징(북경)발언과 관련, 애써 태연한 반응을 보였다. 이날 상오 김영삼대통령 주재로 열린 청와대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이회장의 발언문제에 관해서는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관계자들의 표현대로 「삼성 특유의 방대한 로비력」이 주효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겉으로는 조용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았을뿐 분노의 분위기가 잠재돼있음을 느끼게 했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회장의 발언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어느 재벌이든 정해진 규칙과 법률을 어기는 경우 원칙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의미있는 말을 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항간에서 나도는 통치권누수설을 의식한듯 『문민정부는 어느 기업으로부터도 정치자금을 안받는다는 점에서 떳떳하다』면서 『취임이후 지금까지 김대통령이 칼국수를 먹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삼성그룹이 잘못하는 일이 생기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말로 들린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또 이회장 발언의 진의를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대기업의 총수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청와대 경제수석실의 한 비서관은 『이회장이 평소 말을 정연하게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회사 관계자들을 모아놓았을때나 할 수 있는 얘기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비서관은 『어느 조직에서나 지도자는 권리와 책임을 동시에 갖고 있다』면서 『지도자라면 자신의 말에도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이회장의 자질문제까지 거론했다.

 이회장이나 삼성에 대한 여권의 이같은 시각은 물론 비공식적인 것이다. 대부분의 관계자들도 사견임을 전제로 『현정부가 들어선이후 결과적으로 가장 특혜받은데가 삼성』이라며 『이번 기회에 삼성과의 밀월설등으로 인한 부담을 덜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도 이회장의 베이징발언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개발독재시절 정경유착등 온갖 특혜로 커온 기업이 과거는 모두 잊어버린채 정치권만 4류라고 매도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자당은 이회장이 정치권과 관료집단을 싸잡아 「하류」로 매도한 사실이 몹시 못마땅한 눈치다.  특히 민자당 스스로도 「아킬레스건」으로 생각하고 있는 삼성자동차허용문제를 전적으로 「정치적 사안」으로 몰아붙인 점엔 당혹감마저 느끼는 듯하다. 이승윤 정책위의장은 『우리 경제가 이처럼 발전한 데에는 기업 못지않게 관료집단과 정치권의 기여가 뒷받침됐는데도 이제와서 어떻게 자기들만 앞서 간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이에비해 민주당은 여권 및 삼성측을 함께 비판하며 은근히 정부와 삼성의 갈등을 즐기는 모습이다. 박지원 대변인은 『정부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며 불쾌감을 표시한 것은 바람직스러운일이 아니다』고「훈수」했다. 그는 또 이회장에 대해 『과연 정치권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먼저 묻고 싶다』며『오늘의 정경유착풍토를 만든데 대한 반성이 앞서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신재민·신효섭 기자>

◎재계·삼성 움직임/“정부 불쾌감 어떻게 표출될까” 촉각/연일 대책회의·관계부처방문 해명도

 이건희회장의 베이징(북경)발언 파문이 수그러들지 않고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자 재계는 정부의 불쾌감이 어떤 방식으로 표출될지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재계는 최종현 전경련회장의 정부비판발언에 이어 올들어 두번째 발생한 재계총수의 설화사건에 대해 정부가 『최회장의 정부비판은 공식석상에서 이뤄졌지만 이회장은 사석에서 비보도를 전제로 발언했다』고 차별성을 강조한 사실을 들어 이회장발언에 대한 정부의 대응강도가 그다지 세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재계는 청와대와 여권고위층의 분위기가 겉으로 드러난 것처럼 담담하지만은 않다는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계는 『최회장 설화사건 이후 간신히 회복돼 가고 있는 정부―재계의 화해무드가 이번 일로 다시 냉각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면서도 『정부와 삼성이 적대관계라는 이회장의 발언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과천청사의 경제부처 관계자들도 이 문제를 애써 확대해석하는 것을 피하는 모습이었으나 『그대로 넘어가겠느냐』고 반문했다. 재경원의 한 고위간부는 『경제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공무원을 싸잡아 매도한 것도 불쾌하지만 삼성이라는 재벌이 좋은 일만 하는 기업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은 난센스』라고 꼬집었다.

 이회장의 베이징(북경)발언이후 연일 파문확산을 막기 위한 비상대책회의를 열어온 삼성그룹은 좀처럼 파문이 수그러들지 않자 15일에도 현명관 비서실장 주재로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이회장의 측근인 홍석현 중앙일보사장은 이날 이회장발언 파문에 대한 보고차 베이징으로 떠나기 위해 14일 급히 중국비자를 받았으나 『너무 나서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판단에서 출국시기를 조정중이다. 비서실 관계자들도 『그룹 임원들이 당장 중국을 방문할 계획은 없다. 국내 상황을 팩시밀리로 이회장께 보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회장은 파문이 계속 번지자 15일로 예정했던 귀국을 16일로 하루 연기했다가 『현지에서 일이 끝나지 않았다』며 다음주초로 귀국일정을 또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관계자는 『사태의 추이를 지켜본뒤 해결책을 구상해 귀국하려면 좀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지난달 제일제당과의 불화설이 극에 달하자 해명기자회견을 가졌던 이희준 그룹부사장은 이회장 발언파문을 조기 진화하기 위해 내주중 해명성기자간담회를 개최할지 여부를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룹내에서는 이에 대해 『언론에 그동안의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는게 오해를 없애는데 도움이 된다』는 의견과 『오히려 긁어 부스럼이 된다』는 우려가 엇갈리는 상황이라고.

 한편 삼성자동차등 삼성그룹 계열사 고위간부들은 15일 통상산업부등 관계부처를 돌아다니며 이회장의 진의를 전달하며 양해를 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경원과 통산부는 이회장 발언에 대해 내심 불쾌해하면서도 개별기업 회장이 사석에서 한 말을 근거로 발끈하는 것도 정부의 품위를 잃는 행동이라는 생각에서 공식적인 대응은 자제하는 분위기였다.<남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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