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노란 개나리가 화사한 4월의 색조를 뽐낸다. 한데 이 싱그러운 봄에 웬 돌개바람들이 이처럼 거세게 부는지 모르겠다. 나라안팎에서 황사바람을 비롯, WTO바람·엔고바람들이 윙윙거리는가 하면 지방선거돌풍도 심상찮다. 잠시 봄의 정조에 취했다가도 갖가지 시새움 바람에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는 4월은 역시 「잔인한 달」이기도 함을 재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외신이 전한 「악의적 묵인」이란 말이 새삼 떠오른다. 미국달러의 급락과 일본 엔의 급등사태를 놓고 지금 미국이 취하고 있는 겉다르고 속다른 자세를 경제분석가들이 그렇게 표현한다는 보도였다. 겉으론 달러부양책을 말하면서도 내심으론 달러하락을 통해 수출경쟁력과 일본시장개방효과를 은근히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차가운 오늘의 국제현실인가. 4월의 화사함 대신 영하40도의 혹한이 차라리 느껴진다.
한국형 경수로건설문제를 놓고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북한측에 자기네 제품의 판촉을 겸해 온갖 관련정보를 제공했다는 보도에다 자몽과 초콜릿을 앞세운 미국의 WTO통상 압력냉기는 지금 또 얼마나 차가운가.
우리도 남들이 던져준 엔고반짝경기에 취해만 있을게 아니라 대일 누적적자가 1천억달러라는 현실을 더 무서워할 때인데 오히려 4월의 목련꽃 그늘아래서 한가롭게도 과소비를 일삼으며 지방선거라는 단잠에 푹 빠져있는 것이다.
지방자치라는 풀뿌리민주주의의 정착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정치권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갈수록 국가적 이해의 각축이 냉엄해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 기민하게 대처하는 가운데 차분하고 낭비없게 자치의 풀뿌리를 깊고 단단히 심어야할텐데 그렇질 못해 문제인 것이다.
사실은 우리의 지자제 앞날을 심히 걱정스럽게 하는 다섯가지의 불길한 경보들이 이미 알게 모르게 내려져 있다. 그 첫째는 지난해 12월 정부의 합동특감으로 그 실상이 드러났던 전국적 도세만연실태였다.
당시의 특감결과로 전국 2백59개 시·군·구청 모두에서 빠짐없이 도세사실이 적발되었다는 사실은 지방자치단위의 행정 및 자체 감사기능에 엄청난 구멍이 뚫려있음을 드러낸 것에 다름아니다.
이같은 지방행정부실에 이어 지방의정조차 부실에 빠져 있음은 엊그제 나온 감사원의 지방의회특감결과가 잘 말해준다. 무보수명예직이었던 제1기 지방의회의원들이 93·94 두해동안 모두 5백여억원의 국민혈세를 부당편성 또는 집행해 집단외유를 하는등 낭비했던 것이다. 중앙정부나 감사기구의 감독·감사기능이 삼엄한 자치실시이전의 중앙집권체제에서도 지방행정·의정질서가 이 정도였다면 앞으로 닥칠 사태를 예고해주고도 남는다 하겠다.
셋째로 지역간의 행정협의 및 행정공조체제의 난맥 또한 나쁜 조짐들이다. 최근 팔당상수원보호구역에 대한 보호실태조사결과 서울시와 경기도가 환경행정공조와 협의에서 차질을 일으키고 있었고, 김포매립지제방붕괴연안오염사건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같은 현실은 국가적 개발계획이나 지역간 공조개발 및 협의행정이 지자제가 실시되면서 더욱 어려워질 것임을 뜻하는 것이다.
넷째로 드러났던게 지방토호세력의 비리사슬문제였다. 인천북구청도세사건으로 그 존재가 부각됐던 각 지방의 토호조직이 전국적으로 1백40여개에 이르고 있고, 지방의 조직적 부정·비호사건때마다 이런 조직이 배후에 도사리고 있다는 앞서의 문제제기는 지자제앞날을 한결 어둡게 만든다. 이런 토호조직들이 이번 선거를 계기로 지자제의 단체장과 의정을 장악·조종할때 그 작폐는 더욱 증폭될 것이다.
끝으로 가장 걱정스러운게 정치권의 지자제 및 지방선거 오도이다. 앞서 열거한 그 많은 불길한 조짐들을 알면서도 이번 선거를 진정으로 풀뿌리민주주의와 지방자치력을 착근시키는 계기로 삼기보다 정략적으로만 이용하려는 기색이 완연하다. 그래서 경선을 앞세우다가 느닷없이 후보 추대대회소리가 튀어나오고 있고, 앞으로의 대권전초전으로 지역편싸움을 격발시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4월은 꽃내음과 선심 막걸리에 취해있을 때가 못된다. 우리에게 이미 내려있는 불길한 다섯가지의 지자제경보는 나라밖으로부터의 차갑고 각박스럽기까지 한 이해다툼, 그리고 앞날이 불투명한 국내과열경기의 불안까지 겹치면서 우리 모두의 냉철한 자세를 거듭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3류, 4류소리마저 나왔는데 또다시 5류로 떨어질 수야 없지 않겠는가.<수석논설위원>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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