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보좌서 사생활관리까지 “무소불위”/“남경제발전 놀랍지만 소비문화 지나쳐” 김일성 사망직후 북한의 권력내분설, 김정일 체제 위기설등이 국내외 언론보도를 통해 전해졌다. 그러나 김정일의 권력장악에는 지금까지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권력체제가 집단지도체제로 나갈 것이라는 전망도 현실성이 약하다. 김정일은 80년대초부터 당·정·군등 권력핵심에 자신의 남산학교와 김일성대 학 동창등 측근들을 심어가며 차근차근 권력이양 준비를 해왔다. 김정일은 이미 70년대말부터 아버지에게서 통치권의 핵심인 인사권을 물려받아 소신껏 휘둘러왔다.
내 부친(조철준·65)도 78년 부장(장관급)에 임명될 때 김정일에게서 직접 임명장을 받았다. 김일성은 일찍부터 김정일에게 권력을 승계한다는 구상하에 각종 주요지시를 의도적으로 김정일을 통해 내려보냈다.
현재 김정일을 정치 경제 군사 문화등 모든 부문에서 수족처럼 보좌하는 핵심조직은 김정일 집무실내 「서기실」이다. 서기실은 김정일의 후계구도가 확고해진 8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조직으로, 종전 당 중앙위 조직부에 속해 있던 기능과 임무를 떼어낸 기구이다. 김정일 집무실에 소속돼 있지만 집무실과 수직관계는 아니며 오직 김정일의 지시에만 따르고 있다. 조직 자체가 베일에 싸여 있어 당 중앙위 조직부에서도 누가 이 곳에 근무하는지 잘 모를 정도다. 이 곳에는 김정일의 직접지시로 배치된 측근인사들이 근무한다.
이 기관은 김정일 직속의 비공개 조직인만큼 철저히 김정일 1인을 위한 업무만을 담당한다. 주요 임무의 첫번째는 김정일의 사업을 보좌하는 일이다. 김정일이 당 조직부·정무원·군등에 지시하는 문건을 내려보내고 각 기관에서 보고된 사항을 정리해 김정일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또 김정일과 국내외 각계인사와의 면담을 알선하는 일도 이곳에서 담당한다.
두번째는 김정일에 대한 정책자문 역할이다. 김정일이 경제 군사 정치 문화 의학 과학 교육등 각 분야별 정책 추진과정에서 수시로 조언을 받을 수 있도록 각계의 최고 전문가들이 배치돼 있다.
자연과학 분야는 전김일성대학 물리학부 교수 서상국, 군사분야는 육군대장 이명국이 맡고 있다. 또 문화부문은 최용호, 정치(선전 선동)부문에서는 이명국등이 고문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부부장급(차관)이다. 이들은 서기실에 상주하며 김정일의 사업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면서 때로는 정책문건에 김정일의 명의로 대신 서명하기도 한다.
세번째 임무는 김정일의 사생활을 철저히 보장해 주는 일이다. 어찌 보면 서기실의 존재이유가 여기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김정일이 술을 마시고 싶어할 때 분위기에 맞게 참석인원을 선정해 동원하고 장소를 물색하며, 술·음식을 준비하는 일등이 모두 서기실 소관이다.
영화광인 김정일을 위해 러시아 중국등 사회주의권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영화상을 받은 유명영화등을 수입하기도 한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 「기쁨조」로 불리는 왕재산경음악단 보천보경음악단 삼지연전자악단등을 관리하는 조직도 서기실이다.
기쁨조는 주요 국가행사나 김정일이 술을 마실 때 흥취를 돋구도록 가무에 능한 미모의 젊은 여성들로 구성돼 있다. 술자리등에서는 퇴폐적인 공연도 종종 벌어진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수십개의 김정일 초대소(별장)도 이곳에서 관리한다. 초대소에는 미모의 여성들이 상주하는데 김정일이 방문할 때에는 성파티가 벌어지기도 한다. 서기실은 김정일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이를 해소시켜 주기 위해 몇명의 희극배우도 항상 대기시켜 놓고 있다.
김정일의 자식들에게 음악 미술등 예능과 외국어를 가르치는 가정교사를 관리하는 일도 중요하다. 김정일 가정의 일이 외부에 발설되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21세 된 큰딸의 여가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음대 외국어대등에 다니는 같은 또래 친구들을 공급하기도 했다.
서기실의 네번째 임무는 김정일의 개인재산을 관리하는 일이다. 북한주민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극비리에 추진해야 하는 사항인만큼 특히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김정일의 호화저택과 수십군데의 초대소, 엄청난 양의 귀금속과 거액의 외화, 국내외에서 상납받는 각종 선물등이 관리대상이다.
서기실은 노동당 「39호실」을 통해 일부 외화를 스위스 오스트리아등에 있는 김정일의 비밀금고에 예금하는 업무도 수행하고 있다. 외화는 해외에서 벌어들인 것중 일부를 빼돌리거나, 자체 사업으로 벌어들인 것이다.
서기실은 외화벌이 사업을 전담하는 직원 1명을 두고 있는데 이 직원은 북한에서 생산된 보석등 돈이 될만한 물품들을 수집, 해외에 판매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한마디로 김정일의 서기실은 서방세계의 대통령 비서실, 또는 러시아의 대통령 행정실에 해당하는 셈이다.
서기실 요원들은 김정일을 그림자처럼 보좌하기 위해 그의 특명으로 그의 생일(2월16일) 숫자가 포함된 「2163333」 「2165555」 「2169999」 「2160272」등 특수 번호판이 부착된 차량을 쓰고 있다. 이들은 북한 전역에 흩어져 있는 수십곳의 김정일별장과 자택등에 무상으로 드나들며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다.
북한의 모든 기관과 간부 차량에는 고유번호가 부여돼 있어 차량번호판만 보면 누가 타고 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당 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 당·정의 부장(장관급)등 고위간부는 모두 김정일의 생일을 딴 「216」으로 시작되는 번호판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뒷번호는 정치국 위원이 50단위, 정치국 후보위원은 60∼70단위, 당 부장은 80단위, 정치국 후보위원이 아닌 부총리급과 정무원 부장은 100단위, 당 검사위원은 300단위등으로 구분된다.
이제 이 수기를 마무리할 시점이다. 나는 지난 1월부터 재정경제원 산하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교수경력을 인정받아 박사급 대우를 받으며 북한경제를 연구중이다.
나는 귀순직후만 해도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 친척 친구들 걱정으로 상당한 정신적 혼란과 갈등을 겪었다. 그러나 남한 각지를 둘러보고 여러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제는 완전히 안정을 회복했다.
남한 주민들이 피땀흘려 산업과 기술을 발전시키는 동안 김일성 김정일체제의 정당화를 교육시키기에 급급해 온 나 자신이 몹시 부끄럽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발전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갈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일보 독자들에게 한가지만 당부드리고 싶다. 남한의 경제발전이 놀라운 수준이긴 하나 주민들의 소비문화가 지나치게 낭비적이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중국 동남아시아등 후발 도상국이 뒤쫓아오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흥청거리다가는 언제 추월당할지 모른다.
가진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을 생각해 좀더 근검절약했으면 좋겠다. 자신의 이익보다는 국민적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확립하는데 한국일보 독자들이 앞장서 주기를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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