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삼성회장 북경발언 파문/“4류·3류”등 비판톤 너무높아반항논/“정경유착시비 부담덜기”관측작전논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의 베이징(북경)발언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이회장의 진의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정치권(청와대)과 행정부(경제팀)에 대한 「반항」인지, 아니면 정부여당을 돕기 위한 고도의 「작전」인지 관심이 대단하다.
「반항」이라는 관측은 이회장이 비록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 조건)를 달기는 했지만 대정부 성토치고는 비판의 톤이 너무 높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을 4류, 정부를 3류라고 평가절하한 것은 출범한지 2년이 지난 문민정부를 무척 민망스럽게 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정치권은 여야 정치지도자를, 정부는 밤낮없이 개혁을 실천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경제부처등의 행정관료들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문민정부가 2년여동안 추진한 개혁이 뭐냐』는 식으로 들릴 수 있다.
최종현 전경련회장의 기자회견이 문제된 것도 『(정부가 아직도) 구태의연하다』는 발언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삼성그룹에 대한 승용차사업허용이 부산시민의 불만해소용이라는 지적도 청와대와 정부당국자들을 아주 곤혹스럽게 하는 대목이다. 삼성승용차사업 허용문제가 정치쟁점화됐을때 정부당국자들은 삼성의 승용차사업진출은 국가경제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이고 부산신호공단은 승용차공장입지로서 최적지라는 경제논리를 앞세웠다. 그런데 당사자인 삼성그룹의 총수가 부산시민의 민원해소용이라고 말해버린 것이다.
이회장의 발언이 「작전」이라는 관측은 김석원 쌍용그룹회장의 정계진출을 계기로 정경유착시비가 불거지고 있는 시점에서 정부여당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자발적인 조치」가 아니냐는 시각이다. 삼성그룹은 매사에 빈틈이 없기로 정평이 나있다. 이 정도의 발언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회장의 기자간담회장에는 비서실 전략홍보팀의 핵심임원이 배석했다. 최회장 기자회견의 파문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한 상태에서 또다시 청와대의 심기를 건드린다는 것은 그룹경영차원에서 결코 득될게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문민정부와 삼성과의 관계는 각별하다. 문민정부가 신경제정책으로 경제개혁에 드라이브를 걸자 삼성은 신경영으로 화답, 재계의 경영개혁을 주도했다. 공무원은 삼성연수원에서 의식개혁교육을 받기도 했다.
김영삼대통령은 재벌총수를 독대하면서 첫대상자로 이회장을 택했다. 삼성은 또 숙원사업인 승용차사업권을 따낸데 이어 한국비료와 분당 서현역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경쟁그룹의 관계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항」도 아니고 「작전」도 아닌 평소의 문제의식이 자연스럽게 표출됐다는 시각도 있다. 2세총수들의 가장 큰 공통점의 하나는 「겁이 없다」는 사실이다. 성장과정에서 어느 누구한테 간섭을 받지 않고 자라온 2세총수들은 자신의 소신을 주위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말하는게 보통이다. 최회장(선경) 이회장(삼성) 김회장(쌍용)등이 다 그렇다. 보도하지 않는 조건의 기자간담회였던 만큼 이회장이 평소에 임원회의 석상에서 사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을 허심탄회하게 했다가 예상치 못한 파문을 낳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이백만 기자>이백만>
◎이 회장 북경간담회 일문일답 내용/“공장 세우는데 도장천개 받아야/정부와 삼성 밀월아닌 적대관계”
삼성그룹의 이건희회장은 지난 13일 낮12시부터 1시35분까지 중국 베이징(북경) 조어대(조어대)에서 한국특파원단과 오찬간담회를 가졌다. 삼성의 중국투자 계획과 중국에 대한 인상, 하루 앞서 만난 장쩌민(강택민)국가주석과 리펑(이붕)총리와의 대담내용, 그리고 앞으로의 중국 정세전망등에 관해 질의·응답을 주고 받던 이회장은 한 특파원이 한국내의 투자계획에 대해 질문을 하자 강도높게 정부와 관료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회장은 스스로도 발언의 수위가 높다고 인식했는지 4차례이상 직접 「오프 더 레코드」를 걸었으며 배석했던 간부들도 이회장의 발언이 대목대목 끝날 때마다 「오프 더 레코드입니다」를 연발했다. 다음은 이회장과 특파원단과의 대담 내용이다.
―삼성시찰단이 올해초 나진―선봉지구를 방문하고 돌아왔는데 대(대)북한 투자계획은 잘 진척이 되고 있는지요.
『한국정부의 허가가 나오지 않았어요. 대북한 투자에 관해서는 한국에서 결정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은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북한의 정책이 다른데다 미·중·일·러의 이해관계가 얽혀 되는게 하나도 없다는 느낌입니다』
―쌍용그룹 김석원회장이 정치에 뛰어들었는데 정치에 입문할 생각은 없는지요.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하지요. 우선 나는 원래부터 남의 이름을 외우지 못합니다. 삼성그룹에는 중역이 1천명, 사장이 50여명 되지만 1천여명의 임원중 2백명정도쯤만 이름과 얼굴을 일치시켜 기억할 뿐입니다. 또 한가지 나는 집이나 호텔에 들어가면 곧바로 잠옷으로 갈아입어요. 정장과 골프복외에 중간복이 없어요. 잠옷은 대신 많이 있습니다. 잠옷 입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노릇을 하기는 뭣하겠지요. 김회장과는 개인적으로 친합니다. 김회장은 자신도 말했지만 정치하는 분위기속에서 컸습니다. 나는 3살때 대차대조표와 주판을 본 것이 기억이 날 정도로 사업하는 분위기속에서 컸습니다. 나 역시 김회장이 21세기에는 정치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예상보다 더 빨리 정계에 진출했습니다』
―젊고 유능한 차세대 정치인을 양성하기 위해 일본의 마쓰시타 정경숙과 같은 인재 양성기관을 세울 생각은 없는지요.
『정치 언론 경영자등 3개 주체가 그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재단이나 기금을 하나 만들까 구상중입니다. 사람을 키우는 일을 해보려고 구상중입니다』
―부산·경북지역의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는데 이지역에 대한 투자계획은 없는지요.
『우리나라는 행정규제때문에 투자를 하려 해도 투자를 할 수가 없어요. 우리나라의 행정규제와 권위의식이 없어지지 않는한 21세기에는 제밥도 찾아 먹지 못할 것같다는 우려가 듭니다. 중국의 국가주석이 「몇마이크론이냐, R&D가 얼마냐」며 깊은 관심을 보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반도체공장을 지으려해도 허가가 나오지 않아요. 여러분들은 삼성이 무엇을 하면 쉽게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공장을 세우려면 1천개의 도장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상태로 행정규제가 계속되면 되는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 정부 들어서고 나서 많이 완화했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완화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삼성에서 부산에 자동차공장을 짓는다고 하니까(이거 오프 더 레코드로 합시다) 부산시가 시작부터 삼성을 상대로 땅장사를 하려고 해요. 추수를 풍성하게 해 세금을 거둬가려는게 아니라 종자를 상대로 세금을 거두는 격입니다. 사업 하나를 시작할때 2백가지 문제가 생기면 어려운 것이고 1백가지 문제가 생기면 극복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3백∼4백가지의 문제가 생깁니다. 아마 자동차투자가 삼성이 한국에서 하는 마지막 투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국에서는 투자를 유치하려고 안달인데 한국의 관료들은 허가권을 붙들고 있습니다. 반도체의 경우 세계 톱이 될 수 있는 산업으로 한국에서 나가서는 안되는 산업인데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관료행정을 개선해볼까 해서 관료들에게 선진국을 시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 해도 삼성이 하는 것이라고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 그만두었습니다』
―항간에서는 삼성이 자동차산업진출을 허가받은 것 때문에 정부와 삼성이 밀월관계라고 말하는데.
『밀월관계가 아니라 가장 「앤티(적대)」한 관계이지요. 자동차산업진출도 부산주민때문에 된 것입니다. 자동차사업을 허가하면서 인력을 데려올 수 없도록 규제한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을 위배하는 것입니다』
―몇년전 삼성제품을 2류품이라고 질타했는데 그후 개선이 되었습니까.
『2류에서 한 1.5류쯤으로 개선되었다고 할까요』
―이회장의 말을 듣고 보면 우리나라의 앞날이 매우 암담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의 미래를 너무 비관적으로 보는게 아닙니까.
『한국은 21세기에 지금보다는 부유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수준으로는 지금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지키기는 커녕 오히려 후퇴할 것입니다』
―대통령이 세계화를 외치고 행정규제를 대폭 완화했다고 하는데 문제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또 그러한 문제점은 기업가중에서 대통령이 나와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지요.
『기업가출신 대통령이 나와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국민의 발상이 근본문제입니다. 이 자리가 마치 정부규탄대회같이 되었는데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이며 기업은 2류입니다. 70년대에 경제발전을 이룩하는데 관료가 큰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베이징=유동희 특파원>베이징=유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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